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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님께서 남기신 글 (2018-01-07 12:16:36, Hit : 328)
<그분께서 해주신 일 하나도 잊지마라.> 부산가톨릭간호사회 총회 미사

<가톨릭 간호사회 총회 미사>

(INTRO)
오늘은 주님 공현대축일입니다. 예수님께서 그리스도, 메시아, 구세주로 ‘드러나심’을 기념하는 날입니다. 탄생이 있고, 드러남이 있습니다. 애가 태어났다고 절로 알아지는 것은 아니지요. 탄생을 알리게 됩니다. 그래서 100일 잔치니 뭐니 벌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탄생과 드러남은 같은 맥락이라고 여겼기 때문에 전통적으로 예수님 탄생과 공현을 같은 축일로 삼아, 동방교회에서는 오늘을 주님의 탄생축일로 지내고 있습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그분이 내 인생 안에서도 구세주요, 주님으로 드러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세상과 크게 다르지 않은 일들을 수행합니다. 치료하고 간호하고 돌봅니다. 하느님이 없어도 할 수 있는 일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세상과 다를 수 있다고 말할 수 있는 지점은 바로 이 대목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행위를 통하여 하느님이 드러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것이 부산가톨릭간호사회의 정체입니다. 부디. 힘들고 녹녹치 않은 각자의 의료환경에서 하느님의 사랑이 드러나고 전해질 수 있기를 이 미사를 통하여 다시 한 번 우리의 마음을 모으도록 합시다. 잠시 침묵으로 이 미사를 준비합시다.

(강론)

<그분께서 해 주신 일 하나도 잊지 마라.(시편 103,2)>

2017년도를 되돌아보면 참으로 많은 일들이, 역사적으로도 기록된 한 해라고 생각합니다. 인간 사회의 진보에 있어서 평화로운 정권교체는 적지 않게 존재했지만, 2017년 대한민국에서 벌어졌던 촛불. 시민으로부터의 권력교체가 이토록 치열하고 장중하게 제기되었을 뿐만 아니라 기어이 정권의 교체로까지 이어진 것은 아마도 인류 역사상 처음 겪어본 사건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지요.

촛불혁명으로까지 칭해지는 일련의 과정을 관통하며 저는 단순히 이것이 정권의 교체가 아니라 시대의 교체, 혹은 시대정신의 교체로 전환되고 있음을 느낍니다. 우선은 아주 많은 시민들이 지니고 있는 자의식, 그리고 자존감이 극대화되고 있습니다.

우리가 누군가! 우리는 대한민국의 주인이고, 그 주인인 우리, 곧 촛불을 든 한 시민인 나로부터 모든 권력은 나온다! 라는 구체적이고도 강렬한 체험이 공식적으로 제기된 것이지요. 그리고 거기에 반하는 낡은 세력. 반칙과 특권에 사로잡혀 사사로운 이익을 편취해온 무리들을 적폐와 갑질로 규정하고 그들을 역사의 심판대 앞에 하나하나 끄집어내어, 시민들이 이양한 공적권력으로 적폐와 반칙, 특권과 갑질을 바로 잡는 청산작업이 진행되는 것을 보며 그렇습니다. 우리들이 지니고 있는 힘. 시민들이 지니고 있는 집단지성이 얼마나 놀라운 일들을 해낼 수 있는지에 관하여 공감하고 있습니다.

시대가 바뀐 겁니다. 이것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수구세력과 언론, 그리고 여전히 특권과 반칙을 내려놓지 못하고 부끄러워할 줄도 모르는 이들의 저항이, 이 바뀐 시대를 다시는 되돌리지 못할만큼 단호하게, 막힌 것은 뚫어야 하고, 어두운 것은 밝혀야 하며, 부패한 것은 완전히 새로운 것으로 바꾸어내야 합니다. 이것이 촛불이 밝힌 시대의 정신입니다.

그러면서 2017년 한 해의 마감 앞에 선 제 개인적 소회와 두려움은 그런 것이지요. 이 물결. 시대가 요구하는 청산과 도전의 새로운 물결이 단순히 정권과 권력에 한정되는 것인가! 아니라는 점이지요. 지금 우리가 몸담고 있는 이 교회, 그리고 우리들의 병원. 이 안에는 막히고 어둡고 부패한 것은 없는가! 질문할 때, 두려움이 밀려온다는 것은 어느새 내 자신이 이 안에서 뭔가를 취득하고 이기하는 권력의 소비자이기 때문일 것이고, 또 한편으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교회, 우리 병원 안에서 벌어지는 특권과 갑질, 반칙과 적폐가 있다면 생살을 도려내더라도 그것을 바꾸어내야만, 시대를 선도하지는 못하더라도 뒤처지지는 않을 수 있다는 인식이 우선하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가톨릭 계열의 병원들이 가지는 정서적 함정이 여기에 있습니다. 천주교 병원이니까. 신부님 수녀님들이 운영하는 병원이니까. 그리고 거기에 일정부분 안주하거나 동의하여, 비록 세련된 방식은 아닐지라도 천주교재단이 운영하는 병원이 지니고 있는 일정한 수준의 인식이 시대에 뒤떨어진다면 바꾸어야지요. 최소한 저는 그렇습니다. 천주교재단이 운영하는 병원. 혹은 천주교 신자들이 일하고 있는 병원이 적폐로 규정된다면 그것은 너무나 고통스럽습니다.

마치 우리가, 무슨 간호사들의 짧은 치마를 보고 싶어서 희희낙락거리는 그 정도 수준의, 질 낮은 집단으로 호도되는 것에 대하여 경멸합니다. 우리를 어떻게 보고. 최소한 병원에 근무하는 전문가 집단을 대하는 인식이 이정도 수준밖에 안된 소양의 집단으로 매도당하는 것에 대하여 참을 수는 없지만, 그 정도 인간이 되지 않기 위하여, 다시 제 자신과 우리 병원, 그리고 가톨릭 간호사회를 돌아봅니다.

단 한 번도 바라본 적이 없었던 사람처럼 여러분들을 보고, 또 여러분 앞에 선 제 자신을 봅니다. 병원 하나가 서고 그리고 그 병원이 수십년 동안 수백 만명의 사람들을 진료하고 치료하고 돌보아주었다면 거기에는 세상의 어떤 잣대로도 규정할 수 없는 숱한 희생과 눈물과 헌신이 있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자기들은 이것을 하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한 것입니다. 저는 이것이 매도되지 않기를 바랄 뿐입니다.

간호사들이 밤낮 가리지 않고 환자들을 돌보아왔던 그 선한 지향들이 고용과 착취의 잣대로만 자기들 마음대로 재단되지 않기를 바랄 뿐입니다. 좋은 일을 하고도 욕을 먹고, 마음 다해 간호했음에도 불구하고 존중하기보다는 당연시해온 사람들이 벌떼처럼 나서서 병원을 흔든다할지라도 저는 그렇게 말하겠습니다. 이 사람들은 저에게 아주 소중한 사람들입니다. 저는 떠나더라도 이 사람들은 병원에 남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왜냐하면 이들이 없으면 병원은 스스로를 지킬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병원에 꼭 있어야 하는 사람들. 제가 할 수 있는 한 그 사람들이 병원에 존재해야 하는 이유를 전해주는데에 최선을 다할 뿐입니다. 있어주어 고맙고, 함께 고생해주어 고맙고, 아무도 우리에게 고맙다 말하지 않더라도, 나와 당신들만이라도 서로를 고마운 사람으로 만들어주는 것. 이것이 저는 그 어떤 자존감보다 우리가 우리 자신을 지켜내는 현명한 지혜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어렵고 힘든 세월을 관통하며, 참으로 많은 일들을 치르고 겪어냈지만, 시간이 더 지나 돌아봤을 때 저는 우리가 서로를 격려하고 지지하고 돌보아주었던 것에 대하여 참으로 감사를 드릴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해주신 많은 일들이었음을 떠올릴 것입니다.

2018년. 부산가톨릭 간호사회는 전국가톨릭간호사 피정을 주관합니다. 14년 만의 피정준비이기 때문에 오랜 시간 그 기금을 마련해오신 여러분들에게 감사를 드립니다. 피정의 내용은 그렇습니다. 먼저 우리 자신을 되돌아볼 것입니다. 그리고 가톨릭 신앙을 가진 간호사들이 누구이고 왜 다른가? 를 질문할 것입니다. 그러면서 깨달아가기를 바랍니다.

하느님께서 내 인생 안에 참으로 많은 일들을 해주셨음에 대하여 피정이 마칠 즈음 함께 깨달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2018년도 가톨릭간호사회 피정 주제 말씀을 시편 103편 “그분께서 해주신 일 하나도 잊지마라.”는 말씀을 뽑았습니다.

세상이 뭐라하고 누가 뭐라해도 우리는 우리의 일을 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수행하는 이 일에는 하느님만이 하실 수 있는 치유가 있고, 은총이 있고, 구원이 있습니다. 우리가 비록 신앙심은 강하지 못할지라도 우리는 이 일이 내가 아니라 하느님께서 행하시는 일임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이 일을 통하여 구원받을 것입니다.

내가 한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내 안에서 일하실 수 있도록 우리는 끊임없이 우리 자신을 비워낸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마지막 주님 앞에서 자신들의 흰 옷으로 다른 사람들의 피를 끝까지 닦아주었던 사람들로 기록될 것입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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