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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님께서 남기신 글 (2018-01-12 08:46:04, Hit : 344)
<걸어 나갔다> 연중 제1주간 금요일

<연중 제1주간 금요일>

<걸어 나갔다>

페르시아에 의한 이스라엘의 패망 이후 벌어졌던 주요 작업 가운데 하나는,
하느님의 백성인 자신들이 겪는 현실적 고통의 이유를 찾고
다시금 하느님의 자녀로 돌아가기 위한 정체성 회복 운동이 전개되었고
그 대표적 결과물이 바로 모세오경의 집필과 흩어졌던 율법의 수집이었습니다.

그러니까 그들은 페르시아와 바빌로니아의 연속된 침공과 식민 지배를 겪으면서
스스로의 정체성을 찾아갔던 것입니다.

큰 맥락은 이렇습니다.
우리는 선민選民이었으나 죄로 인하여 버림받았고
하느님이 거룩하신 것처럼 우리가 부정을 씻고 다시 거룩해진다면
과거의 영광. 곧 하느님으로부터의 구원을 누리게 되리라는 전망을
다섯 권의 책으로 엮었으니 이것이 토라라고 불리는 모세오경이라 하겠습니다.

모세오경 가운데서도 세 번째 책에 해당되는 ‘레위기’는 그 전체가 거룩해지는 법, 곧 부정을 씻는 방법에 관하여 자세히 열거합니다. 어떻게 속죄 제물을 바쳐야 하고, 어떻게 희생제사를 올려야 하는지에 관한 이스라엘 경신례의 총합이 바로 레위기에 주제이지요.

그것에 의거하면, 부정한 남자는 산비둘기 두 마리아 집비둘기 두 마리를 가지고 만남의 장막 문간, 야훼 앞으로 나가 사제에 그 제물을 드려야 하고, 사제는 그것을 받아 한 마리는 속죄제물로, 한 마리는 번제물로 삼아 드려야 합니다. 이렇게 하여 사제는 하느님 앞에서 병고를 짊어진 사람의 부정을 벗겨주어야 합니다.(레위기 15,14-15)

이것이 율법이 정한 절차입니다. 이 경신례의 절차를 통하여 그는 죄를 벗고 정화 받은 자, 용서 받은 자, 구원 받은 자가 되어 다시금 공동체 속으로 돌아갈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복음에 비추어보면 경신례의 절차가 생략된 것입니다.
그는 속죄제물을 올리지도 않고 번제물도 바치지도 않은 채 용서를 선언 받습니다.
율법 학자들이 격노하는 까닭입니다.

오랫동안 장구한 체험을 거쳐 완성된 용서와 구원의 틀을 정면으로 파괴하시는 예수님을 향한 그들의 분노는 정당해보입니다. 경신례를 장악해 온 자신들의 존재감이 말살되어버리는 것이지요. 레위인들, 곧 자기들을 통해서만 용서와 치유와 구원은 전달되는 것이었습니다. 하느님의 이름을 앞세워 이어온 자신들의 권위와 독점이 침해당하자 그들은 기꺼이 칼을 듭니다.

자, 복음은 간명합니다. 예수께서는 그의 병고를 보시고, 또 그를 지붕을 뜯어서라도 당신 앞에 모시고자 했던 이들의 ‘믿음을 보시고’ 그에게 용서를 선언하십니다. 그리고 용서의 결과인 치유를 완성시켜내십니다.

용서가 먼저이고 정화는 그 다음입니다. 이것이 하느님의 순서입니다. 치유를 확인하고 나서 용서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저 고통 중에도 담겨있는 믿음만 보십니다. 그가 정화되었거나 치유되었거나 회복된 것이 용서의 전제가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레위기는 이것을 따라가지 못합니다. 부정이 끝나야 속죄제와 번제를 올릴 수 있었고, 더러움을 벗어야, 치유가 확인되어야 비로소 경신례를 통할 수 있었던 시대가 종료된 것이지요.

그리고 오늘 복음의 마지막 말씀.
“그는, 모든 사람이 보는 앞에서 밖으로 걸어 나갔다.”(마르 2,12)

그를 붙잡았던 병고도, 그를 주저 앉혔던 경신례의 주관자들도, 그리고 어찌 하느님만 하실 수 있는 용서를 인간이 획책하냐며 제동을 걸었던 모든 철창들을 끊어버리고, 그는 <밖으로 걸어 나갔습니다!>

복음은 이것입니다. 들것에 실려왔던 자가 제 들것을 가지고 걸어 나갑니다!
그에게 벌어졌던 이 모든 과정이 저는 오늘 이 병원 안에서도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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