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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님께서 남기신 글 (2018-01-18 08:27:37, Hit : 367)
<그 여자의 약속> 연중 제2주간 목요일

<연중 제2주간 목요일>

<그 여자의 약속>

인간의 약속이란 게, 인간이 인간에게 담보한다는 믿음이란 게 얼마나 얄팍한 것인가! 또 한 번 뼈저리게 다가오는 대목이 바로 아들 앞에서 한 사울의 맹세입니다. 다윗을 죽이지 않겠다던 사울은 그 이후로 틈만 나면 눈에 가시인 다윗을 죽이기 위해 기회를 엿봅니다.

물론 아들의 간청 앞에 사울의 맹세는 진심이었는지 모릅니다. 우리가 하는 대부분의 약속과 결심이 그랬던 것처럼 말이지요. 하지만 인간의 진심이라는 것이 그렇게 오래가는 것이 아닐 뿐이고, 때로는 상황을 모면하기 위한 자기 암시에 불과할 뿐인 거지요.

그냥 죽어 없어져 버렸으면 싶은 순간들이 있습니다. 차라리 그랬더라면 내 마음이라도 지켰을 지켰을텐데. 오만 꼴을 다 보고서도 오늘까지 살아있는 이유를 또 묻는 사람들이 수두룩 합니다.

남편에게 일방적으로 이혼당하고 그토록 지키고자 애썼던 가정이 파탄 나고 말았습니다. 성당에서 복사까지 섰던 두 아들은 하느님은 없다며 교회를 떠났고, 아무것도 더 이상 하고 싶지도, 할 수도 없어 그저 죽고자 했던 자매를 찾아가, 그래도 살아야 한다고 말을 꺼내기가 참 힘이 들었습니다.

정말 그녀는 살아도 죽어있던 사람이었습니다. 병자성사를 받아도 죽지 않고 아무리 기도해도 살길이 보이지 않던 그녀를 일으킨 것은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내가 너를 이렇게 만들려고 간택한 것이 아니다!”라는 성경 말씀 때문이었습니다.

그야말로 성경이 부풀어 올라 뚱뚱해질 때까지 숨 줄처럼 부여잡고 읽었답니다. 모르면 묻고 알면 외우고. 그것 말고는 어떻게 해야할지 하나도 몰랐던 거지요. 절망을 이기는 유일한 통로가 하느님 말고는 하나도, 믿을 곳도 기댈 곳도 없었던 겁니다.

열에 아홉은 세상을 돈 때문에 살지만, 자기는 열에 하나의 길을 가겠다고 마음 먹기까지 10년이 걸렸습니다. 처음에는 하느님 앞에 섰을 때 절망과 고통 두려움과 원망 뿐이었지만, 열의 아홉이 아니라, 열의 하나로 살자고 마음을 바꾸니, 어떤 지경이라할지라도 하느님 앞에서 더 이상 원망과 두려움, 고통과 절망으로 끝맺지는 않더라는 거지요.

어떻게든 먹었고 어떻게든 입었으며 어떻게든 살아지게 되더라. 그리고 10년이 지나 저에게 연락을 준 것입니다. 첫 월급을 탔는데 식사라도 대접하고 싶다고. 그래서 만났습니다.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던 사람이 적지 않은 나이에 공립 중학교의 상담 교사가 되어 나타났습니다.

오만 꼴을 다 봐서 그런지 나보다 더 한 아이들은 없더라며 언제까지 이 일을 할 수 있을지는 몰라도, 당신은 오늘만 살뿐이라 했습니다. 자기에게 하느님은 내일 계시지 않다 했습니다. 오늘만 하느님이 매일 매순간 나와 함께 계실 뿐이고, 이 하느님을 놓게 되면 자기는 단 하루도 살 수 없다고. 10년이 지나니 내가 이렇게 변해있더라, 하십니다.

진짜 신앙이라는 것이 뭘까? 머리 속으로 오만가지를 기도하고 청하고 결심하면서 정작 삶은 그것과 엉뚱하게 살아버리는 숱한 나날들이 스쳐갑니다. 하느님과 단 한 순간이라도 연결되어 있지 않으면 1분 1초도 살 수가 없다는 그 여인이 오히려 나보다 훨씬 더 하느님을 사랑하고 있음이 확실했을 때, 저는 아무 말도 더 할 수가 없었습니다.

“이 꼴을 보려고 여태 우리를 살려두시는 것 같습니다. 자매님이 부럽습니다.”
혼자 병원 계단을 오르며 드는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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