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31 8/203 회원가입회원로그인
  View Articles
 님께서 남기신 글 (2018-01-04 05:57:37, Hit : 294)
<알아봄> 주님 공현 전 목요일

<주님 공현 전 목요일>

<알아봄>

성탄 팔일 축제가 지나고 주님 공현 전까지 진행되는 복음의 일관된 주제어를 꼽자면, <알아봄>입니다. 어짜피 공현公現이 ‘공적 현현’, 하느님의 ‘드러내심’에 대한 ‘알아봄’을 그 테마로 삼고 있음을 감안할 때, ‘알아보다’, 혹은 ‘드러나다’의 관점으로 이 시기의 복음을 천착하고 묵상하신다면 지속되는 맥락을 이어가기가 수월하다는 생각입니다.

사람이 사람을 알아보기까지 얼마만큼의 시간이 걸린다고 생각하십니까?
누가 조사를 했다고 그러지요, 흔히 첫눈에 반했다고 할 때 대략 8.2초가 걸린다고 합니다.
사람은 그런 거지요. 8.2초만에, 그야말로 첫눈에 반할 수도 있는 존재입니다.  
하지만 8.2초만에 반했다는 그 사람이 참으로 어떤 사람인가를 알아보는데에는
거의 한 평생이 걸리는 거지요.

그렇게 좋아죽고 못살던 사람도, 다시는 생각하고 싶지도 않은 끔찍한 사람으로 전락하기까지 그렇게 많은 시간이 소요되는 것은 아닙니다. 결국 따지고보면 첫눈에 반한 그 사람이나 인간 말종처럼 느껴지는 그 사람이나 실은 똑같은, 한 사람일 뿐이지요.

그러니 애시당초 그. 그 사람의 문제는 아니었던 겁니다. 그 인간은 원래 그런 사람이고, 다만 그런 사람을 ‘안다!’고 단정했던 것과 그 사람이 진짜 어떤 사람인지를 깨달아가는 이 차이에 대한 간극을 감당하는 것이 결국 저마다의 인생일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알아보았다고 생각했고 안다고도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막상 살아보니 그게 아닌 겁니다. 평생을 살아도, 한 이불을 덮고 살아도, 알아도 아는 게 아니고 살아도 사는 게 아닌 게 인간입니다. 올해가 저희 부모님 금혼식이라며 뭘 한다고 야단이던데, 그렇게 50년을 살아도 막상 본가에 가보면 손주 손녀를 앞에 두고도 아직도 서로 싸웁디다.

‘지긋지긋하지 않냐?’고 물으면 뻔한 거지요. 두 분 모두 뜻대로 안되는 거지요. 젊어서는 그 사람이 뜻대로 안되고, 늙어서는 이 마음이 뜻대로 안되는 겁니다. 정말로, 인간의 인두겁이라는 것이 얼마나 두꺼우면 벗기고 또 벗겨내도 한 사람의 맨 얼굴을 알아보기까지 이토록 지난한 세월이 걸리는 것일까!

그런 관점에서 본다면 복음은 그 많은 인간의 세월을 한꺼번에 달통한 듯, 한 눈에, 단박에 알아차립니다. 그리고 그 한 순간 한 시점에서 이름마저 바꿔버릴 정도로 정확하게 한 사람의 정체를 꿰뚫고 삶을 통째로 바꾸어버립니다.

겨우 반나절을 함께 보내고 안드레아는 메시아, 구세주를 알아봅니다.
안드레아가 데리고 온 시몬을 눈여겨 본 주님께서는 그를 케파, 반석, 베드로로 알아봅니다.

하지만 안드레아가 그분을 자신의 메시아요 구세주로 고백하고 선포하기까지 그는 자신의 목숨을 걸어야 했고, 시몬이 베드로, 반석으로 자신을 알아보기까지 그는 평생이 걸렸야만 했습니다.

이는 마치 우리가 하느님을 알아보기까지. 내가 왜 이렇게 사는지를. 이해할 수 없는 인생과 고통을 왜 이렇게까지 살아야 하는지를 다 알아보기까지. 걸리는 시간과 맞먹는다고 할 수 있지요.

이제 겨우 마흔 다섯 먹은 젊은 부인이 영문을 알 수 없는 암세포가 뼈까지 전이되어 6개월 만에 전혀 다른 사람처럼 말라버리고, 마지막까지 그 곁을 지키는 남편의 텅빈 눈동자를 보았을 때.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 감히 안다, 말할 수가 없어졌습니다.

사람이 사람을 알아보기까지. 그리고 사람이 하느님을 알아보기까지.
평생토록 걸리는 것이 인간인가 봅니다.
아멘.








Prev  <금혼식> 주님 공현 전 금요일
Next  <예언> 성탄 팔일 축제 제5일
Copyright 1999-2021 Zeroboard / skin by uZin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