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31 8/203 회원가입회원로그인
  View Articles
 님께서 남기신 글 (2018-01-16 08:50:40, Hit : 367)
<1920년대 생> 연중 제2주간 화요일

<연중 제2주간 화요일>

<1920대 생>

어제, 두 아들을 신부로 둔 한 어머니의 장례미사를 다녀왔습니다. 평양에 살다가 1.4 후퇴 때 남하하여 목초근피로 연명하며 자식들을 길러내고 오직 신앙하나로 살다가 떠나간, 이제는 얼마 남지 않은 1920년대 출생자들의 떠나는 모습은 그야말로 질곡같은 소설책 한 권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해도 과언이 아니지요.

일렁이는 역사의 파고를 온몸으로 부딪히며 살아낸 사람들. 비단 1920년대 생만이 아니라 어쩌면 이 격랑같은 시대를 관통한 모든 세대들에게는 그렇습니다, 따로 자서전을 쓰지 않는다할지라도 정말로 고생하셨다...는 탄성이 공감처럼 전해집니다.

젊어서는 먹고 살기 위해 그렇게 끌려 다니더니, 늙어서는 시간이 이끄는 데로 이내 몸이 멍들어갑니다. 원하지 않는데 아프고 뜻하지 아니하게 고장이 납니다. 그나마 아픈데 추스르고 멍든데 도닥이며 깨닫는 것이 있다면 이내 육신이 세상에서 제일 큰 짐덩어리라는 사실입니다.

그렇게 죽지 못해서 사는 사람들이 많이 있는 곳이 병원입니다. 이도 저도 안되고, 제 아무리 용하다는 인간의 재주로도 더 이상 어떻게 할 수 없으나 그렇다고 <죽어지지도 않는!> 기막힌 상황 속에 떨어진 인간에게 마지막 남은 임자가 누구인가 물으면 답은 하나입니다. 시간입니다. 시간만이 인간의 주인입니다.

시간만이 내가 원하지 않는 곳으로 나를 이끌어갑니다. 젊어서는 이 시간이 왜 그리도 지리멸렬하던지. 고통스러울 때는 끔찍하게도 더디 가던 이 시간이 늙어서는 그야말로 함부로 쏜 화살처럼 날아가 버린다... 하십니다. 주인이 누구인지 깨달으라는 탄식이겠지요.

하느님만이 시간의 주인이십니다. 하느님만이 시간의 시작과 마침을 주관하십니다. 제 아무리 대단하던 인간도 그의 일분 일초도 제 마음대로 할 수가 없었습니다. 이게 무섭습니다. 죽고 싶다고 죽어지지가 않고 살고 싶다고 살아지는 것도 아닙니다. 주인이 따로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의 아들이 안식일의 주인이다.”(마르 2,28)하십니다. 안식일은 시간의 완성이고, 시간이 완성되는 안식일의 주인이 바로 사람의 아들 곧 예수님이라고 고백하는 것이 그리스도교입니다. 왜 우리가 예수를 그리스도라고 고백하는가?

시간이 그 답이 됩니다. 아직 우리는 이 하루를 부여받습니다. 사는 것이 아니라 살아지는 것이지요. 원하지 않는데 아프고, 뜻하지 않는데 상처받으며, 내가 살고 싶지 않은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살아내야만 하는 시간. 그러면서 질문합니다.

나는 도대체 누구이며, 왜 이렇게 살아야 하는가!

시간의 관점에서는 그렇습니다. 하느님께서 원하시고, 하느님께서 뜻하시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알 수 없지만 이렇게 살아낸 모든 시간들이 결국에는 한자리에 모일 것이고, 그 때 비로소 우리는 모든 시간을 털어 장중하게 고백할 것입니다. 모든 것이 은총이었노라고.

그렇게 1920년대 생, 한 어머니가 떠나가며 그리 유언을 남기셨답니다. 아멘.







Prev  <그 여자의 약속> 연중 제2주간 목요일
Next  <걸어 나갔다> 연중 제1주간 금요일
Copyright 1999-2021 Zeroboard / skin by uZin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