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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님께서 남기신 글 (2018-02-02 08:32:09, Hit : 333)
<봉헌> 연중 제4주간 금요일

<연중 제4주간 금요일>

<봉헌>

불과 18년 전에는 그랬습니다.
서품을 받는 사제의 수가 19명 부제 17명, 모두 36명이 서품을 받기에 그 넓은 남천성당도 부족하다 하여, 사직실내 체육관을 대관해 거기에서 서품식이 열렸었지요.
그게 불과 18년 전의 일입니다.

나도 한 번 살아보겠다고. 예수처럼. 기회만 주신다면. 흠결 많고 죄 많고 문제 많은 나이지만 어디에 어떻게, 나를 보내더라도, 써주기만 해달라. 부복하고 엎드려 간절히 청하였던 젊은이들이 그렇게도 많았었습니다.

그리고는 18년이 흐른 것이지요.
어제가 서품 받은 날이라며 축하드린다고 독일에 있는 신자들에게 연락이 왔습니다.
사실 저부터 잊고 있었습니다.

그 때는 정말, 단지 저를 써주기만 하면 되었습니다. 신부생활하며 월급 얼마 달라고 요구하지도 않았고, 어디에서 어떤 일을 하고 싶다 요청하지도 않았습니다. 단지 교회의 사람으로, 나의 것에 대한 요구는 하나도 하지 않을테니. 그저 써주기만 해달라고 청하였을 뿐입니다.

그런데 지금은 어떤가? 열여덟 해가 지나는 동안 자꾸만 기대치가 올라갑니다. 내가 이만큼 했으니. 내가 얼마나 했으니. 비교하고 평가하고. 나는 마치 대단한 무엇을 한 것처럼. 그리고 또 기대를 합니다. 하지만 택도 없는 일이지요.

처음에 우리는 그저 허락해달라고 했을 뿐입니다.
모든 걸 다 드릴테니 그저 나를 허락해달라고.

억지로 사는 사람이 아무도 없습니다. 자기가 좋아서 사는 겁니다. 자기가 좋아서 이 사람을 만났고, 자기가 좋아서 이 직업을 선택했으며, 자기가 좋아서 신부되고 수녀된 겁니다. 그런데 세월이 지나니 마치 자기가 대단한 뭘 한 것처럼, 자기가 고생하고, 자기가 손해보고, 자기가 뭐나 되는냥, 착각을 하더라는 말이지요.

오늘 우리가 만나는 복음의 단어는 <봉헌>입니다. 그 어떤 것도 셈하지 않았던 철저한 단어이자, 새삼스레 돌아보니 민망하기 그지없는 매서운 칼자루입니다.

과연 18년을 살면서 나는 무엇을 봉헌하였던가! 굳이 신부 수녀 아니었더라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게 살았을 나의 욕망과 탐욕. 시기와 질투와 교만과 아집. 과연 이 중에 나는 무엇으로부터 자유로운가!

다시 봉헌하는 수 밖에 없습니다. 나이를 먹고. 제 아무리 세월이 흘렀다할지라도.
그 어떤 것도 기대하지 않겠다.

어디에. 무엇을. 어떻게. 나를 사용하고, 때로는 버려질지라도. 그 때에도 정말, 원망하거나 다치거나 상처받지 않겠다. 이것이 봉헌이었으므로. 주고 치우고, 하고 치우고, 봉헌하고 치워야만 비로소 완전해지는 것이므로.

오늘 봉헌생활자 수녀님들의 봉헌갱신 서약에 다시 한 번 집중해보시기 바랍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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