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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님께서 남기신 글 (2017-11-20 08:53:24, Hit : 330)
<What can I do for you?> 연중 제33주간 월요일

<연중 제33주간 월요일>

<What can I do for you?>

하느님의 본성에 대한 인간의 질문이 적극적으로 개진되었던 신학의 시대에도 결국 하느님은 누구이며, 神 인식을 전제로한 인간과의 관계, 그리고 神이 근원적으로 지닌 원의에 대한 고찰을 넘어서지 못했습니다. 神에 대한 접근이 인간의 인식과 이해의 범주를 넘어서지 못하는 태생적 한계 때문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일부 무신론자들이 제기하는, 神은 인간의 상상력에 의해 만들어진, 가공된 존재라는 비판 제기도 피하기는 어렵습니다.

신학자의 눈으로는 그렇습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에 인간은 그 사랑에 응답하기 위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질문하고 가르칩니다. 하느님을 전제로 인간을 규정하고, 이해하기 따라서는 인간을 제어하고 구속하게 되지요.

하지만 신앙인, ‘믿음인’의 눈으로 본다면 오늘의 복음은 적당합니다. 인간이 하느님에게 무엇을 해야 하는 존재가 아니라, 오히려 하느님이 이렇게 제안합니다.  

“내가 너에게 무엇을 해주기를 바라느냐?”(루카 18,41)

오히려 하느님을 ‘무엇을 해주기를 바라느냐?’라고, 도리어 우리에게 질문하는 존재로 바꾸어보시지요. 그 하느님에 대한 인식이 훨씬 더 신앙적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궁극적으로 하느님은 나에게 무엇인가 해주기를 원하시는 분이십니다. 아니, 처음부터 마침까지 끊임없이 무엇을 해주신 분이십니다.

내가 청한다고 해를 주시고 내가 청하지 않는다고 비를 주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이름도 성도 정해지지 아니하고 생김과 닮음조차 구상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어느 날 나게 하시어 이만큼 살게 하시고, 내가 알 수 없는 그날 이 정처 없는 목숨에게도 돌아갈 길이 되어주십니다. 이런 눈으로 다시 복음 속의 신앙인을 만나는 것입니다.

“내가 너에게 무엇을 해주기를 바라느냐?”

단순했습니다. “다시 보게 해주십시오.”
대답도 아무런 조건도 전제도 미룸도 없습니다.

“다시 보아라.” 다만 한가지를 덧붙일 뿐입니다. “너의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하느님을 만나기까지. 하느님을 알아보고 그분이 나에게 원하시는 것보다 내가 그분께 원하는 것이 무엇이었나...를 제대로 질문하기까지 그는 보지 못하는 사람으로 헤매였고 그분을 만나자 눈을 뜬 것입니다.  

눈을 뜨다!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물어보시는 분을 향해 눈을 뜨다! 내가 뭘 잘해서도 아니고 잘못해서도 아닙니다. 심지어 내가 심각한 죄 중에 있다할지라도 그분은 분명히 이렇게 물을 것입니다.

“내가 너에게 무엇을 해주기를 바라느냐?”

하느님에 대한 믿음은 그분이 우리에게 지닌 사랑의 깊이가 어느 정도인지를 깨달은 그만큼 깊어집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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