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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야소리 님께서 남기신 글 (2004-04-16 19:35:11, Hit : 847)
<마리안느, 말가렛따> 연중 제13주간 월요일

<마리안느, 말가렛따>

소록도에 가면 50년 가까이 그곳에서 생활하신 오스트리아 수녀님 두 분이 계십니다. 마리안느, 말가렛따 수녀님. 스물이 갓 넘은 처녀 시절부터 이역만리 이곳에 오셨으니 지금은 칠순 노인이 되신 분들이십니다.

소록도 나환우 어르신들이 어찌나 이 두 분 수녀님을 사랑하는지 그 수녀님들 집엘 가면 종교가 소용이 없습니다. 그저 방문을 두드리는 사람, 그 '사람'이 전부입니다. 개신교 신자가 8할이 넘는 소록도 사람들 틈바구니 속에서도 그분들은 수녀님을 넘어 어머니로 살아가고 계십니다.

그 수녀님들께서는 매주 목요일이 되면 주님 만찬 날이라고 소록도에 봉사 나와있는 신학생들에게 저녁 만찬을 함께 하자고 초대하십니다. 메뉴라고 해야 유럽사람들이 좋아하는 치즈 가득한 스파게티와 와인 한 잔이 전부이지만, 저는 그 느끼한 음식보다는 그분들의 사는 모습이 좋아 부지런히 수녀님들의 집을 들락날락하였습니다.

처음 수녀님들 집에 가서 저는 깜짝 놀랐습니다. 봉쇄구역이 있을리 없는 그 수녀님들의 침실에 있는 당신들의 짐을 보고 저는 놀랐습니다. 독일어판 성무일도서와 성서책, 그리고 간호복과 수도복, 겨울 외투와 조그만 기도상이 전부였습니다.

소록도에 고작 6개월을 살기 위해 들어온 저보다도, 50년을 이곳에서 살으셨던 분들의 짐이 더 작다는 사실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런지요.

"여우도 굴이 있고 하늘의 새도 보금자리가 있지만 사람의 아들은 머리 둘 곳조차 없다."

그분들을 보고 저게 진짜 삶이다 싶어 저도 신부 생활 시작할 때, 가방 몇 개 승용차에 실어 시작했지만, 저 역시 이곳 범일에 올 때, 승용차에 다 싣지 못해 몇 개의 짐이 더 늘어 있었습니다.

이 세상의 주인조차도 머리 둘 곳조차 없다하셨거늘, 내 몸 하나, 내 맘 하나, 내 뜻대로 못하는 미물 주제에 온갖 것을 지니고 있으면서도, 그래도 부족하다고 없는 것만 아쉬워하고 있으니, 멀어도 한 참 멀었구나 싶습니다.

방안에 물건 하나 더 늘 때마다, 마리안느 말가렛따 두 분 수녀님이 생각나 그렇게 죄송할 수가 없습니다.

버리고 떠나야 만날 수 있는 분, 머리 둘 곳조차 없으신 그 분 앞에 여전히 내 것이 많은 사람들은 그래서 망설일 수밖에 없나 봅니다. 그래서 머뭇거릴 수밖에 없나 봅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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