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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야소리 님께서 남기신 글 (2004-04-16 19:37:56, Hit : 1058)
구걸하기에 앞서> 연중 제14주일 주일학교 간식비 모금미사

<연중 제14주일 강론>

<구걸하기에 앞서>

일전에 주일학교 선생하나가 눈물을 뚝뚝 흘리고 있습니다. 분위기를 보아하니 문제는 빤합니다. 교리실을 들어가 보니 아니나 다를까 개판 오분전입니다. 한바탕 고함을 쳐놓고 아이들을 잡기 시작했습니다. 적어도 이 정도 하면 아이들이 좀 잦아들고 반성하는 척이라도 해야하는데 한 녀석이 돌아서는 저의 뒤통수에 대고 뭐라 이야기를 합니다.

우짜겠습니까? "이놈이... 너 내 방으로 따라와!" 학교 선생님들이 왜 아이들을 때리나... 그 심정을 알 것 같았습니다. 아이를 앉혀놓고 물끄러미 쳐다봅니다. "설명을 함 해봐라. 우쨌으면 좋겠노?" 누그러진 저의 목소리에 자신을 얻었는지 이 초등학생은 또록또록 잘도 이야기합니다.

떠든 것은 우리 반 여자아이들만 선생님이 감싸서 그런 것이고 아까 자기가 했던 소리는 신부님에게 한 것이 아니고 옆에 있는 친구에게 한 말이기 때문에 그것은 저의 오해라는 것입니다. "그럼 넌 아무 잘못도 없이 지금 내 방에 앉아있는 거가?" 하니까, 그 학생이 또 대답합니다. "아니요. 그래도 떠들고 돌아다닌 것은 나의 잘못이니까 이 부분에 관해서 신부님이 때리시면 저도 맞겠습니다." 합니다.

"햐참... 때리긴 뭘 때려? 여기가 학교냐? 나도 니 말대로 내가 오해한 부분은 풀테니까 니도  가서 선생님께 죄송하다고 말씀 드리라"고 주의를 준 다음, 초등학교 때의 제 모습을 떠올렸습니다. 신부님 앞에서 찍소리도 못하고 그저 그분 말씀이면 전부인줄 알았었던 그 때와는 딴판이었습니다.

지 할 소리 다하고 지 할 말 다하고 좋고 싫음이 분명하였습니다. 이런 아이들과 지내다 보니 녀석들이 보이는 모습, 드러나는 모습이 전부라고 생각하면 뒤통수를 맞을 때가 한 두 번이 아닙니다. 눈에 보이는 것만이 전부가 아니었습니다. 하느님께서 하시는 일은 언제나 눈에 보이는 것 그 너머에 있다는 사실을 초등부 아이들을 통해서도 배웁니다.

그 녀석들이 가지고 있는 꿈, 마치 씨앗이 품고 있는 생명처럼 얼마나 많은 일들과 희망들이 저들 속에서 꿈틀거리고 있나를 생각하면 꽥 고함을 질러버리고 싶다가도 멈추게 됩니다. 언제나 보이는 것 너머에서 일 하시는 하느님의 숨소리가 분명 이 어린이들과 함께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그렇습니다. 있는 그대로 보고 있는 그대로를 사랑해야 한다고 이야기하고 또 가르치고 있지만, 사실은 있는 그대로, 그 진면목 그대로를 볼 줄 아는 눈은 참 드문 것 같습니다. 있는 그대로 보기보다는 내가 원하는 대로 보기를 좋아하고, 있는 그대로 듣기보다는 내가 생각한 대로 들으려 하는 경향이 농후합니다.

한 번 좋은 사람은 뭔 짓을 해도 감싸주려고 그러고, 한 번 미운털이 박힌 사람은 뭔 짓을 해도 밉상으로 보이는 이유가 이것입니다. 미운 시어머니는 밥을 많이 먹어도 밉고 적게 먹어도 미운 것처럼 내가 가진 선입견은 그 사람을 있는 그대로 보도록 내버려두지를 않습니다.

오늘 복음 내용도 그렇습니다. 고향 사람들 눈에는 도저히 하느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보이지 않습니다. 그저 못 배워먹은 목수가 보일 뿐이요, 과부의 아들이 보일 뿐이요, 그 형제와 자매들만 눈에 들어올 뿐입니다. 예수님은 그런 그들 앞에서 아무것도 더 하실 수가 없으십니다. 내 것으로 가득 차 있으니 당신이 들어오실 틈이 없습니다.

안다는 것은 이처럼 또 다른 앎을 제한합니다. 알기 때문에 더 이상의 진리를 수용하지 못합니다. 있는 것에 대하여 있는 그대로 볼 수 있는 눈은 행복합니다. 그러나 있는 것 그 너머까지 제대로 꿰뚫을 수 있는 눈이야말로 진짜 은총입니다.

제대로 보아야 하는 것 참 많이 있습니다.

남편도 제대로 보아야하고 아내도 제대로 보아야 합니다. 부모도 제대로 보아야 하고 자식도 제대로 보아야 합니다. 있는 그대로 보는 것은 언제나 내 편에서 바라보는 시야입니다. 있는 것 너머를 보아야 우리는 제대로 사랑할 수 있습니다.

맨날 술에 쩌들려 사는 인간인데도 그 남편의 가슴속에 멍이 한가득입니다. 지가 하는 게 뭐 있노 싶은 아내의 가슴속에 남 모르는 눈물이 한바가치입니다. 이제는 늙고 병든 부모의 가슴속엔 그래도 자식 걱정이 한가득이고, 아무것도 모르고 철없는 그 아이들의 가슴속도 뒤져보면 감사함이 한가득입니다.

이런 것들을 보지 못하니 매일이 불행입니다. 니 때문에 내가 이 지경이라고 생각하니 세상에 나만 이 지경인 것 같습니다. 숨어 있는 그 마음들, 있는 것 너머의 그 마음들, 그것들이 진짜입니다. 그리고 그 진짜인 마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우리 주일 학교 학생들에게도 그런 마음을 가르치고 싶습니다. 있는 것만, 보이는 것만이 전부인 이 세상에서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믿음, 보이지 않는 하느님을 사랑할 수 있는 아이들로 길러내고 싶습니다. 그래서 보이는 것에만 매달린 아이들보다 성당에 나와 더 큰 것을 볼 줄 아는 아이들이 더 많이 행복하게 살 줄 아는 법을 함께 가르치고 배우고 싶습니다.

범일 성당에 세례 받은 아이들, 중고등부만 쳐도 450명이 넘습니다. 그 중에 주일학교에 나오는 학생은 50명이 고작입니다. 모두가 나만 아는 세상 속에서 그래도 이 아이들은 너를 먼저 생각하는 법을 배웁니다. 모두가 성공만이 최고인 세상에서 성공보다 더 중요한 것이 행복하게 사는 삶을 배웁니다.

10대 1의 경쟁률을 뚫고 나오는 학생들입니다. 초등부 90명 중고등부 50명, 눈에 보이는 숫자로는 형편없지만, 있는 것 너머에 있는 것들을 보아주십시오. 이 아이들이 가지고 있는 꿈과 이 아이들을 통해 앞으로 이루어질 하느님의 일을 보아주십시오.

원래 아이 키우는 것은 표 안 나게 돈 드는 일 아닙니까? 밑 빠진 독에 물 붓는 심정으로 평생을 부어오셨기에 길러낸 자식들 아니십니까? 교회의 미래라는 아이들이 점점 성당에서 사라지는 마당에 해봐야 소용없다고 포기해서 될 일은 아닙니다.

지금 있는 아이들, 그래도 지금 성당에 앉아 성서를 배우고 말씀을 배우고 있는 우리 범일 성당 주일 학교 학생들을 이 성당의 보물로 보아주십시오. 보물들이 보물답게 자라날 수 있도록 보아주시고 도와주십시오.

현재에도 본당예산의 많은 부분이 아이들에게 들어갑니다만은 표도 잘 안 나고 돈 잡아먹는 귀신들 같습니다. 그래도 우짭니까? 내 살 내 피 지금 이 아이들에게 부어주어야 우리 교회의 내일을 이 아이들에게 맡기지 않겠습니까?

간식비가 바닥났습니다. 원래 예산에 없던 중고등부 학생들에게 간식을 해줘야 한다고 이 철없는 보좌신부가 돈을 바닥내었습니다. 이 아이들이 성당에 와서 어른들의 관심과 사랑을 받으며 자라고 있음을 느끼게 해주고 싶었습니다. 개신교회 만큼은 못해도 돈으로 아이들을 배불리는 저 개신교회 만큼은 못해도, 그 사랑만은 제대로 전달해주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사랑은 하는데 그 표현은 제대로 하지 못하고 사는 요즘 가정들 속에서 그래도 성당에 가면 느낄 수 있는 그 표현방법을 어머니들의 손길을 통해 맛보게 해주고 싶습니다. 그러다 보니 돈이 듭니다. 초등부 간식비를 땡겨쓰며 그랬습니다. "일단 쓰입시다. 우리 본당 어르신들이 아이들 하나 더 먹이는데 돈 쓴다고 야단치시지는 않을 겁니다. 오히려 잘했다고 당신 주머니 털어서라도 메워주실 것입니다." 큰 소리쳤습니다.

일년에 딱 한 번, 아이들을 위해 이 보좌신부가 거지 노릇하겠습니다. 어제 제가 직접 바구니를 들고 부모님 앞에 가서 돈을 받았습니다. 이것을 본 주일학교 학생 하나가 저에게 그럽니다. "신부님이 왜 구걸하세요?"

대답을 하려다 문득 그 아이의 눈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저를 보았습니다. 구걸할려고 신부된 것이 아닌데... 이게 아닌데 싶다가도, 이 아이들을 위해서라면 구걸보다 더 한 것도 저는 해야만 하는 사람임을 깨달았습니다.

아이들을 위해 범일 성당 보좌신부 이번 주일, 구걸하겠습니다. 거지 되겠습니다. 아이들을 위해서라면 구걸보다 더 한 것도 앞으로 하며 살겠습니다. 그러니 2차 헌금 때, 제가 바구니 들고 밖에 서있을 랍니다. 요즘 간식 비쌉니다. 통닭 한 마리도 10000원입니다. 피자 한 판 20000원입니다. 우리 아이들에게 통닭 한 마리, 피자 한 판 사주십시오.

그것보다 더 큰 희망과 내일을 저희들은 먹고 자라겠습니다.

있는 것 너머의 있음에 관하여, 보이는 것 너머의 믿음에 관하여 힘을 실어주시고 여러분도 그 믿음 때문에라도 행복한 한 주간 되시기 바랍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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