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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야소리 님께서 남기신 글 (2004-04-16 19:38:58, Hit : 711)
<위험한 사랑> 연중 제14주간 목요일 강론

<위험한 사랑>

사랑은 전부를 걸어야 하기에 위험한 것입니다. 반 만 주는 사랑은 진짜 사랑이 아닙니다. 자꾸만 내 몫을 챙겨놓는 사랑은 진짜 사랑이 아닙니다. 전부를 줄 수 있는 사랑만이 진짜 사랑입니다. 전부를 주어야 전부를 가질 수 있는 것이 바로 사랑의 진면목입니다. 그래서 사랑은 위험한 것입니다.

그런 사랑을 말씀하십니다. 전부를 내 건 위험한 사랑을 말씀하십니다. 하느님에 대한 그런 철저한 투신은 엄청난 힘을 발휘하게 됩니다. 전부를 맡겼으니 전부를 누릴 수 있는 힘을 체험하게 됩니다. 초세기 교회는 바로 이것을 큰 자랑으로 여겼음이 분명합니다.

그리고 선포된 말씀에 대한 수용의 태도 역시 명백해집니다. 예스 아니면 노입니다. 중간이 없습니다. 진리는 분명한 것, 명확한 것입니다. 그리고 진리에 대한 태도 역시 분명하고도 명확해야 합니다.

세상을 사는 일에는 희지도 검지도 않은 회색이 있을지 몰라도 하느님 앞에서는 회색이란 있을 수 없습니다. 전부를 얻거나 아니면 전부를 잃거나 두 가지 뿐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신앙은 매일 매일을 그 두 가지의 선택 사이에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전부를 걸지도 않으면서 전부를 얻으려고 하는 사랑이 많습니다. 적당히 내 몫을 챙겨두는 사랑에선 결코 풍요로움을 만끽할 수 없습니다. 충만함을 만끽할 수 없습니다. 어딘지 모르게 허전하고 그러고 나서도 공허한 사랑이 너무 많습니다. 그래서 세상사는 맛이 없어지는 것입니다.

전부를 주어야 전부를 가질 수 있을 터인데 어줍잖게 쥐고 있는 그 몇 개를 놓지 못해, 이러지도 저러지도... 전전긍긍하는 사이에 우리는 늙어가고 있습니다. 하느님 나라의 대문 앞에 턱하니 서버리고 맙니다.

소돔과 고모라의 심판날이 그렇게 다가온 것처럼 말입니다. 갑작스레 당도한 당신 앞에서 나는 무슨 말을 늘어놓을 수 있을지 벌써부터 걱정입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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