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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야소리 님께서 남기신 글 (2004-04-16 19:39:14, Hit : 1049)
<엔도 슈사쿠의 『침묵』>연중 제14주간 금요일

<엔도 슈사쿠의 『침묵』>

오늘 복음의 내용은 초세기 교회에 있어 신앙을 지켜내고, 그 신앙을 전달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어려움과 위험들에 직면했었는지를 우회적으로 보여주는 대목이라고 보시면 적당한 이해가 되리라 싶습니다.

단지 예수를 주님으로 고백한다는 그 사실 때문에 당해야만 했던 숱한 박해의 상황들에 있어 뱀같이 슬기롭고 비둘기 같이 양순해야한다는 이 은유적인 표현을 묵상하며 엔도 슈샤쿠라는 일본 작가가 쓴 『침묵』이라는 책이 생각났습니다.

일본의 박해 시절에 선교사로 파견되었던 한 사제, 페레이라 신부의 이야기입니다. 열정적인 선교 소명에 불타 일본에서 활동하던 페레이라 신부는, 자신이 배교하지 않으면 아무 죄 없는 신자가 자기 대신 하루에 한 명씩 무지막지한 고문 끝에 죽임을 당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하게 됩니다. 그리고 박해자는 선교사인 당신이 배교를 하면 이들의 목숨을 살려 주겠노라고 윽박지르며 배교의 표시로 예수님의 성화를 발로 밟을 것을 지시합니다.

나의 육체나 나의 자유에 대한 제약이 아닌 타인의 자유와 타인의 생명까지 담보로 내걸어야 하는 이 절명의 상황에서 그 사제는 번뇌 끝에 결국 배교를 선택합니다. 그리고는 성화 속의 예수님을 자신의 발로 밟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이태리 본국에서 조사관을 파견해 그의 배교가 진실인지 알아보게 합니다. 이제는 배교자가 된 페레이라 신부는 이런 글을 써서 그 답에 대신합니다.

"밟아도 괜찮다.  
너의 발도 지금 아플테지,
오늘날까지 나의 얼굴을 밟은 인간들과 마찮가지로 아플 것이다.
하지만 그 발의 아픔만으로 이제는 충분하다.
나는 너희들의 아픔과 고통을 나누어 갖겠다.
그 때문에 나는 존재하니까?"

페레이라 신부의 선교는 결국 실패해 버린 선교였을까 되묻게 됩니다. 우리의 발 밑에 놓인 성화상의 예수님은 그래도 당신의 얼굴만은 밟지 마라 하실 것인가? 생각하게 됩니다.

울고 있는 피붙이를 곁에 두고도 차마 당신의 얼굴을 밟지 못해 그 젖먹이와 영영 이별해야 했던 그 숱한 순교자들의 피 앞에서 감히 말할 수 없는 왜소함과 부끄러움을 느끼면서도...

그 성화 속의 예수님은 과연 무엇이라고 하실까... 되묻게 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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