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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야소리 님께서 남기신 글 (2004-04-16 19:39:54, Hit : 690)
<당신만이...> 연중 제15주일 강론

<당신만이...>

오늘 복음은 예수의 움직임, 운동이 확대되는 단계의 첫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2000년전 팔레스티나 뙤약볕 아래 예수는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기 시작합니다. 악의 세력이라고 믿던 질병과 마귀를 쫓아내기 시작합니다.

그에게는 어떤 건물이나, 조직, 체계도 없습니다. 단지 예수라는 인물과 그 사람을 둘러싼 사건들만이 존재하고 있을 뿐이었습니다. 한 마디로 <예수운동>이라고 규정할 수 있는 이 움직임은 그의 제자들에 의해 더욱 확산되는 과정을 오늘 복음은 보여줍니다.

그러나 그 진행과정에는 어떠한 룰도 없고 의식도 없고 어떤 조건도 없습니다. 오히려 단순합니다. 소박합니다. 어찌보면 무모해 보이기까지 합니다.

"지팡이 외에는 아무 것도 지니지 말라. 먹을 것이나 자루도, 전대에 돈도, 신발도, 지금 있는 것을 그대로, 속옷조차 두벌씩 껴입지 말라!"

예수는 자기의 운명을 이렇게 맡깁니다. 예수는 자기가 목숨건 하느님 나라의 앞날을, 그 전파와 그 방법을 이렇게 '위태로이' 내맡깁니다. 어떻게 하면 성공할 것이고 어떤 사람들을 어떻게 만나 어떤 말을 해야 하는지... 하나의 조건도 붙이지 않습니다.

오히려 제자들을 궁지에 몰아넣습니다. 이제 명령을 받아 파견되기 위해 분주히 물건과 양식을 챙기느라고 분주해 있는 그들에게 "됐다. 그냥 떠나라!" 하십니다.

우리들의 생각은 다릅니다. 우리의 현명함은 이를 부정합니다. 돈도 있어야 하고 먹을 것도 준비해야 하고 안전도 고려해야 합니다. 권위도 있어야 하고 지식도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예수는 우리의 이러한 인간적인 지혜로움을 상대화하십니다.

우리가 돈과 먹을 것과 안전과 권위와 지식으로 하느님을 잘 선포할 수는 있지만 거기에는 한 가지가 결여되어 있습니다. 바로 절박함입니다. 간절함입니다. 오늘 예수의 명령을 받은 제자들은 비장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먹을 것조차 마련되어 있지 않은 그들은 그야말로 하느님만을 구하면서 그 하느님만을 전파해야 했을 것입니다.

세상에는 일을 하는 방식이 세 가지가 있습니다. 첫 번째는 옳은 방식입니다. 옳은 방식으로 일을 처리하기 위해서는 조금 현명해야 합니다. 용기도 있어야 하고 판단력도 있어야 합니다. 인간적으로 지혜로와야 합니다.

두 번째는 그른 방식입니다. 이는 영악해야 합니다. 사기도 좀 쳐야하고, 폭력이나 협박 등도 사용되어야 합니다. 안 되는 것도 되게 하고 되어야 하는 일도 안되게 방해합니다. 실상 세상의 많은 일들이 그른 방식으로 처리되고 있습니다.

마지막 세 번째의 방식은 하느님의 방식입니다. 이 하느님의 방식은 인간적으로 현명하지도 않습니다. 그르지도 않습니다. 하느님의 방식은 이 모든 조건들을 상대화시켜 버립니다. 옳고 그름을 넘어섭니다. 십자가를 보십시오.

'십자가가 유다인들에게는 비위에 거슬리고 이방인들에게는 어리석어 보이는 일입니다. 하느님이 하시는 일이 사람들에게는 어리석어 보이지만 사람들이 하는 일보다 지혜롭고 하느님의 힘이 사람의 눈에는 약하게 보이지만 사람의 힘보다 강합니다.'(1고린 1,23)

예수는 알았습니다. 예수는 하느님의 일을 하느님의 방식으로 하는 법을 알았습니다. 우리에겐 이것이 중요합니다. 하느님의 일을 하느님의 방식으로 하는 것. 예수는 이 하느님을 알았고 이렇게 명령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어떠한 조건도, 어떠한 전제도 없으신 하느님, 그야말로 무차별적으로 사랑하시고 용서하시는 하느님의 방식, 단 하나, 절박하게 당신만을 찾을 것을 도리어 우리에게 간청하시는 하느님... 그리고 그분의 외아들은 그런 하느님을 너무도 잘 알았습니다.

교형자매 여러분.

우리는 모두 하느님의 일을 하는 사람들입니다. 내가 하고 있는 모든 일들을 하느님의 일이 될 수 있도록 살아내야 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그런 하느님의 일을 오직 인간의 방식과 인간적 잣대로만 행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나의 기준에 밀려 하느님의 방식은 언제나 뒷전으로 밀려나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용서는 하느님의 일입니다. 사랑은 하느님의 일입니다. 희망도 하느님의 일입니다. 평화 역시 하느님의 일입니다. 그러나 이를 위해 우리는 너무 많은 인간적인 조건들을 제시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하느님의 방식에 익숙해져야 합니다. 하느님이 우리 각자를 어떻게 사랑하셨는지 기억해 보십시오. 아마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조금의 조건이라도 제시했다면 여기 앉아 있을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을 것입니다. 여러분이나 저나 당신 앞에서면 죄인 아닌 사람 없습니다. 그러나 다행히 하느님 덕분으로 우리 모두는 복된 죄인들일 따름입니다.

인간의 실패를 통해서도 당신의 일을 하시는 하느님을 믿습니다. 돌이켜 보십시오. 우리가 힘들어 숨조차 제대로 쉴 수 없었던 그 고통의 순간들을 떠올려 보십시오. 그리고 그 고통이 어떤 의미였나를, 하느님께서 그 고통 안에서 무슨 일을 어떻게 하셨던가를 떠올려 보십시오.

내가 어찌할 수 없는 상황... 그 속에서 하느님이 더 잘 보이는 것은 신비입니다. 도리어 선물입니다. 하느님만을 의지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 그들이 바로 우리가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만 우리들은 비로소 하늘나라의 주인들이 될 것입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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