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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야소리 님께서 남기신 글 (2004-04-16 19:40:26, Hit : 771)
<안다는 사실> 연중 제15주간 수요일


<연중 제15주간 수요일 강론>

<안다는 사실>

정명조 주교님께서 언젠가 들려주신 이야기가 기억납니다. 당신이 남천성당 주임신부로 계실 때, 예비자 교리반에 선생부부가 참 열심히 교리를 듣더랍니다. 출석도 잘하고 시험을 쳐도 1등이고 해서 앞으로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겠다해서 내심 기특하게 생각했는데... 웬걸, 세례를 받고 나더니 일절 성당에 발걸음을 뚝하니 끊어버리더라는 것입니다.

섭섭하기도 하고 괘심하기도 한 채로 몇 개월을 있다가 가정 방문때 그 선생 부부 집엘 들렀답니다. 자초지종을 물었더니, 그 아내 되시는 선생님이 우리는 단지 가톨릭이라는 지식을 알고 싶어서 교리반에 나갔던 것이지 신앙생활을 하기 위해서 나갔던 것은 아니었노라고 이야기하더라는 것입니다.

하느님을 안다는 것을 하느님에 대한 지식의 확대로만 이해한다면 그것은 터무니없습니다. 하느님에 대한 앎이 하느님에 대한 사랑으로 이어지지 못한다면 그 앎은 헛 것일뿐만 아니라, 그러한 앎은 도리어 하느님 사랑에 방해가 될 때가 더 많이 있습니다.

오늘 복음에 나오는 "안다"라는 의미 역시 이해와 지식이라는 범주를 넘어 있습니다. 도리어 친숙함과 받아들임, 내면 깊숙한 사랑과 확신에 찬 "앎"의 모습을 이야기합니다. 때로는 이 안다는 거죽 때문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하느님 앞에서 걸려 넘어지는지 모릅니다.

저 역시 교리반에서 잘나고 똑똑한 사람들이 열심한 신앙생활을 하는 경우보단, 차라리 당신은 아무것도 모른다고 하셨던 그 아주머니 할머니들이 더 열심히 신앙생활 하시는 경우를 더 많이 보아온 것도 사실입니다.

얼마나 공부를 많이 했고, 얼마나 많은 직함을 가졌음을 묻지 않으시고 얼마나 나를 사랑했는지를, 그리고 그 사랑을 얼마나 잘 실천했는지를 물으실 것이 분명한 하느님 앞에서 나는 부질없는 것 때문에 얼마나 많은 시간들을 낭비했는지 모릅니다.

내 삶이 자꾸 하느님 아닌 일들로 차기 시작할 때, 나는 바빠지는 것이고
타인의 삶을 자꾸 헛 겁질들로만 판단하기 시작할 때, 나 역시 헛된 삶이 되어갑니다.

똑똑해지기 위해 신부된 것이 아니라 하느님을 더 사랑하기 위해 사제가 되었음을 자꾸만 잊고 살게 됩니다. 한 평생을 묵묵히 성당 종지기 노릇을 하는 것이 더 하느님을 사랑하는 데 유리한 삶이라면 차라리 그것을 살아내야 하는데, 그러기까지 버리고 비우고 낮추는 일이 만만칠 않습니다.

하느님 앞에서 단순해진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아주 조금씩 깨닫고 있습니다.
이웃 앞에서 내가 더 낮춘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아주 조금씩 깨닫고 있습니다.

있는 것을 있는 그대로 볼 줄 아는 소박함과 있는 것을 있는 그대로 사랑할 줄 아는 단순함이 오히려 하느님을 더 잘 깨닫는 힘들이 아닐까 싶습니다. 철부지 어린아이의 시선이 바로 그것 아닐까 싶습니다.

조금만 더 소박히 오늘 하루를 살고 싶습니다.
조금만 더 단순히 오늘 하루를 살고 싶습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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