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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님께서 남기신 글 (2008-07-11 10:39:19, Hit : 1059)
평화방송 강론 03 <입에 발린 신앙> 성 베네딕토 아빠스 기념일

<입에 발린 신앙>

평화방송 애청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오늘은 서방 수도 생활의 사부라고 일컬어지는 베네딕도 성인의 기념일입니다. 모든 일에 앞서 반드시 기도로서 시작하고 기도로서 마칠 것을 명한 성인의 뜻에 따라 오늘도 수많은 수도자들은 “기도하고 일하라.”는 가르침에 충실하려 애쓰고 있습니다. 오늘 하루, 일에 묻혀 기도의 힘을 잃어버리시지 않기를 기원하는 마음으로 강론을 시작합니다.

사실 예수 그리스도라는 평화와 진리를 전하는 일이 이 세상 속에서 만만한 일은 결코 아닙니다. 신앙을 통해 하느님을 만난 사람들은 하느님과 함께 살아가는 이 생활이 얼마나 귀한지 잘 압니다. 그래서 내가 만난 하느님을 세상에 전하려고 애를 쓰지만 막상 부딪혀보면 결코 쉬운 일이 아님을 금방 깨닫게 됩니다.

왜냐하면 세상은 언제나 하느님의 뜻과는 정반대의 길을 걸어가고 있으며, 하느님 나라의 방식보다는 세상의 방식을 쫓는 일에 더욱 익숙해져 있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의 방식은 그렇습니다. 정의와 평화와 사랑과 용서, 나눔과 존중이 지배하는 나라입니다. 그러나 세상은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세상은 힘의 논리에 따라 정의가 불의로 바뀌고 불의가 하루아침에 정의로 둔갑하는 곳입니다. 사랑과 평화보다는 독점과 탐욕이 지배하고, 나눔과 존중보다는 경쟁과 소외가 판을 치는 곳이 세상입니다. 이런 가파른 세상살이를 하다 보니 사람들의 마음들도 갈수록 가파르기 이를 데 없어집니다. 예수님 믿고 성당 다니면 밥이 나오나 쌀이 나오나... 나가서 돈이나 한 푼 더 벌어오라는 타박이 이어지게 만드는 곳이 세상입니다.

산다는 일의 경외심이 줄어들고 생명에 대한 존엄을 잃어갑니다. 공정하지 못한 세상은 날이 갈수록 공평해지기가 어렵고 돈이, 경제가, 그리고 국익이 우리 생명의 목적인냥 대치되는 사이 우리는, 경제만 살리면 최소한의 도덕적인 기준과 양심도 모른척했고, 돈 만 되면 먼 짓도 서슴치 않는 사람들이 들끓게 만들었습니다.  

그런 세상 속에서, 그래도 사람이 희망이고 그래도 사랑이 희망이라고, 그래도 정의와 평화를 외쳐야만 하는 사람들은 필경 박해를 받게 되어 있습니다. 그것이 당연합니다. 세상은 도리어 하느님을 향해 우리에게서 떠나가 달라고 지금 악다구니를 치고 있으니 말입니다.  

하느님 없이도 얼마든지 잘 살 수 있으니까 관섭하지 말라고, 종교인은 그저 교회 안에서 기도나 하고 세상일에는 상관하지 말라고, 돈에 찌들대로 찌들어 미쳐 돌아가는 세상일에는 입도 뻥긋하지 말라고, 정치와 종교는 엄연히 분리되어야 한다고 점잖게 타이릅니다.

하느님 없이도 잘 살겠다고 마음먹었던 그것이 바로 인류 범죄의 제일 첫 번째 죄악이었고, 하느님처럼 우리도 높이 쌓겠다고 난리를 치던 바벨탑의 교훈을 잘 알고 있는 신앙인들부터 오히려, 신앙을 그저 조용히 드러내지 않고 내 마음의 평화나 누리며 살아내는 방편으로 삼고 있습니다. 천주교는 원래 조용하고 뭐 그런 것 아니냐고... 그러나 천주교는 마음 수양 프로그램이 아닙니다. 세상을 향해 외치다 십자가에 매달려 죽임을 당하신 분을 우리의 구세주로 믿는 종교가 그리스도교, 우리 천주교입니다.

신앙적인 가치 때문에 세상과의 충돌이 없고, 믿음에서 가르치는 바를 따르기 위해 내 안에서의 고민과 결단이 없고, 나의 신앙적인 선택이 세상 속에서 아무런 파동도 일으키지 못하는, 그런 신앙은 사실 오늘 복음에서 크게 얻을 것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저 마음의 평화와 위로나 구하고, 세상과 적당히 타협하다 신앙의 간절함도 치열한 고민도 없이 그저 좋은 게 좋은 “신앙 구력”만 쌓아올린 덧없는 세월은, 그저 박해라는 단어조차도 영성적인 고통 정도로만 이해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예수처럼 산다면, 세상과 부딪히는 일은 지극히 당연합니다. 돈으로 사람을 얽어매는 세상과 맞서는 일이 신앙이라면 우리는 돈과도 싸워야 합니다. 불의한 방식으로 교묘히 얼굴을 바꾸는 세상의 어둠과 맞서는 일이 신앙이라면 우리는 권력과 비겁한 폭력과도 싸워야 합니다. 좋은 게 좋은 것이라고 부정한 일을 예사로 생각하고 죄에 대한 두려움과 부끄러움을 잃어가는 세상의 쾌락과 맞서는 일이 신앙이라면 우리는 자신의 육신 그리고 우리의 탐욕과도 싸워야 합니다.

그러나 정작 이런 싸움이 없습니다. 그러니 박해도 없습니다. 오늘은 내가 신앙 때문에 무엇과 맞서고 있는지를 곰곰이 생각해 봤으면 합니다. 여러분은 신앙 때문에 과연 무엇과 맞서고 있습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삶 때문에 나는 내 자신과 맞서고 있는가요? 예수님의 사랑과 자비와 진리 때문에 세상의 불의와 부정과 교묘한 어둠의 세력과 맞서고 있는가요? 하느님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 돈만 되면 무엇이든 팔아치우고 땅은 파고 강은 막고 바다는 죽음으로 신음하게 만드는 이 자본의 세력들과 맞서고 있는가요?

아니면 오히려 신앙의 이름으로 세상에서의 성공을 꿈꾸고 신앙의 이름으로 나도 대박을 꿈꾸며 지독한 경쟁의 악다구니에서 도태되지 않을까, 전전긍긍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요?

오늘 복음을 잠잠히 다시 한 번 묵상해보십시오. 비단 2,000년전의 박해 상황에서 끝나버린 위로라 한다면 오늘날 우리에게 복음이 될 수 없으니까 말입니다. 정의를 실천한다는 일은 입에 발린 소리가 아닙니다. 오늘도 예수님처럼 살고 예수님처럼 실천하기 위해 애쓰심으로써 갖은 고통과 고난을 겪고 계시는 많은 그리스도인들께 오늘 예수님의 말씀을 복음으로 전합니다.

“너희는 내 이름 때문에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다. 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이는 구원을 얻을 것이다.”(마태 10,21) 이 말씀에 여러분에게 복음이 되기를 희망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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