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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님께서 남기신 글 (2008-12-30 19:39:14, Hit : 1071)
<길가메쉬 서사시> St. Gertrud 성당 송년미사

<길가메쉬 서사시>

살아온 세월이 일천한지라, 여러분들 앞에 서 있는 이 사제는 여지껏 살면서도 도무지 알 수 없는 일들이 몇 가지 있습니다.

해야지 마음 먹은 것들은 제대로 하지를 않고 안 해야지 하는 것들은 번번이 하고 앉아 있는, 한 길도 안 되는 이 내 마음 속을 알 길이 없고, 최소한 사람으로서 그래선 안 되지... 하는 일들을 태연하게 즐기는 되도 않은 인간들이 되려 큰 소리를 치고, 적어도 자신의 양심을 지키려는 이들은 갈수록 뼈 시린 설움 겪어야 하는 이 순대속 같은 세상을 다 알 재간이 없고, 또 있습니다.

한 해를 살고나면 ‘다사다난’입니다. 전라도 말로는 “징한” 한 해들이고, 경상도 말로는 “엉성시러븐” 한 해들이며, 서울 표준말로는 “말 많고 탈 많은” 한 해들입니다. 그런데 보십시오. 또 새로운 한 해를 맞을 때는 어떻습니까? 그렇게 속고 살았으면서도 또 우리는 올 한 해 만큼은 무사무탈하기를, 제발 사는 일 허탈하게 만드는 사건사고 없기를, 또 희망하고 앉아 있더란 말입니다. 이 얄팍하면서도 순수한 우리네의 ‘희망 속’ 또한 알 길이 없습니다.

<무사무탈>로 출발하여 지나고 나면 <다사다난>으로 끝맺어야 하는 우리의 운명! 그래서 저는 송년 미사를 할 때마다 참으로 사람이 산다는 일이 끝없는 허무의 연속임을 절감합니다.

한 해라는 귀한 시간을 선물로 받았는데, 그 한 해라는 시간 속에 나는 과연 나를 얼마나 더 성장시켰고, 나를 ‘사람다운 사람’, 하느님 자녀다운 사람으로 변화시켰는가? 물을 적엔 한 없이 부끄럽고, 그저 또 죄만 늘이고, 그저 세상이 이 모양이니 어쩔 수 있는가, 한탄과 절망, 포기와 패배의 숫자만 늘여낸 한 해가 아니었나, 돌이키면 아찔하기까지 합니다.

한 해를 보내는 ‘송년’이 되었든, 아니면 “한 해를 잊어버리자!” ‘망년’이 되었든 좋습니다. 오늘 우리 공동체 한 해 마지막 미사의 본질은 <받아들임>입니다. 보내 버린다고 내 것 아닌 것 아니요, 잊어버린다고 내 죄 아닌 것 아니니, 오늘 이 미사 우리 함께 봉헌하며 우리 각자가 살아온 시간들을 받아들이고 서로서로 위로와 격려를 나누었으면 합니다.

하기사 비단 사람이 산다는 일이 1-200년 전 이야기도 아니고, 아마도 시간의 구분이 있기 전 사람들 또한 사는 것이 무엇인지, 인간이 무엇인지, 고민했겠지요. 그래서 오늘 강론을 준비하며 지금껏 인간에게 남아있는 가장 오래된 장편 서사시를 가지고 사람 산다는 일의 시작과 마침을 한 번쯤 읊어봤으면 했습니다.

여러분 <길가메쉬 서사시>라는, 서남 아시아, 메소포타미야 문명의 돌판에 새겨진 이야기를 아십니까? 기원전 18세기,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거의 4000년 가까이 된 아주 오래된 다섯 가지 고대 이야기 중 하나가 길가메쉬 서사시입니다.  

반신반인(半神半人)인 주인공이 친구의 죽음을 애도하며 인간이 영원히 죽지 않을 방법을 찾아 길을 떠납니다. 그런 그를 위험하게 여긴 하늘의 신들은 길가메쉬를 없애기 위해 사자도 보내고 황소도 보내지만 길가메쉬는 죽기 살기로 싸워 그것들을 다 물리칩니다.

그리고는 기어이 땅 끝까지 가서 영원히 살 수 있는 비결을 물었으나, 이 신화에 등장하는 선술집 주인인 ‘시두리’는 “그런 비결이란 없다. 신이 인간에게 죽음을 점지했음으로, 어짜피 인간은 죽을 목숨, 그냥 술이나 한 잔 마시고 돌아가라.”고 합니다.

그리고 그 다음 장은, 기어이 불사의 신묘한 풀을 구한 길가메쉬가 샘가에서 잠든 사이 뱀이 그 풀을 먹어버리고, 잠에서 깬 길가메쉬는 결국 자신이 죽을 운명임을 깨닫고 비탄의 눈물을 흘렸다, 하는 것이 길가메쉬 서사시의 대략적인 내용입니다.

보십시오. 인간의 시작과 마침이 4,000년 전 문헌에도 고스란히 담겨져 있습니다. 이루어지지 않을 것을 꿈꿉니다. 그것이 인간입니다. 그리고 그 이루지 않을 것을 이루기 위해 죽기 살기로 싸웁니다. 이것도 인간입니다. 그리고 마지막, 결국 이루지 못했던 것들을 처연히 받아들이며 죽어 갑니다. 이것마저도 인간입니다.

길게 보면 한 인간의 삶도 이와 마찬가지고, 짧게는 한 해라는 시간도 이와 같습니다. 독일에 처음 왔을 때, 숱한 꿈과 이상을 간직하고 오셨겠지요. 그리고 그 꿈을 이루기 위해 무지한 고생과 노력들을 피를 토하듯 쥐어짜며 살아내셨을 것입니다. 그리고는 뒤를 돌아다 봅니다. 길가메쉬와 같은 어떤 비결, 어떤 성장, 어떤 가치를 얻으셨습니까?  

한 해도 그렇습니다. 한 해가 시작될 때는 오만가지 꿈과 소원을 노래합니다. 그리고는 그  한 해를 정신없이 살아버립니다. 나이를 먹을수록 시간 가는 속도도 빠르다며 달력의 마지막 장이 팽하게 떨어져 나갈 때, 그제서야 한 해는 또 그렇게 사라짐을 받아들이게 됩니다.

이러한 인생의 본질을, 이러한 한 해라는 시간의 본질을 모르는 사람들은 성공과 실패로만 인생을 보고 시간을 판단합니다. 하지만 산다는 일은 성공과 실패의 눈으로만 바라보아서는 안 됩니다. 저는 궁극적으로 희망이 있는 한 실패한 인생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최소한 한 사람이 세상을 살았다, 라고 말했을 때, 그 한 사람의 인생 안에는 성공과 실패의 잣대로만은 결코 헤아리지 못하는 숱한 희망과 의미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길가메쉬는 영원히 살 수 있는 비결을 얻는 것 자체는 실패했을지 몰라도 인간의 무엇인지, 한 인간이 지니는 의미와 본질에 관해서는 충분하였습니다. 삶은 성공과 실패의 문제가 아니라 성장과 의미의 문제입니다.

성공했느냐? 실패했느냐? 로 따지니 늘 조급합니다. 늘 불안합니다. 늘 허무합니다. 하지만 이미 다들 아시지 않습니까?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성공을 요구하시는 분이 아니라 우리의 성장을 요청하시는 분이시오,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요상한 비법을 주시는 분이 아니라 영원한 생명에 대한 희망을 간직하게 하시는 분이시라는 사실을 말입니다.
송년미사를 하니 괜시리 회한과 후회는 남을지는 몰라도 이 송년의 자리에서 궁극적으로 만나야 하는 것은 시간, 우리 인생의 주인이신 하느님을 다시금 희망하고 받아들이는 일입니다.  

오늘 저는 여러분에게 한나라는 나이 많은 여자 예언자의 이야기를 복음으로 전해드렸습니다. 여든 네 살이 되도록 과부로 지낸 이 할머니는 단지 하나, 하느님의 구원을 보고자 성전을 떠나는 일 없이 단식하고 기도하며 밤낮으로 하느님을 섬긴 희망의 사람에 불과합니다. 그리고 오늘 복음은 이 늙은 여자 예언자의 희망을 하느님께서 넘치도록 채워주셨음을 증언합니다.

남편과 일곱 해를 살고는 여든 네 살이 되도록 과부로 지낸 이 여자에게 희망이란 무엇이었겠습니까? 그 정도의 나이를 먹으면 과연 어떤 것을 소망하게 되겠습니까? 아직도 건강을 기원하고, 아직도 성공을 기원하고, 아직도 용서가 되네 안 되네, 죽일 놈 살릴 놈 하고 있겠습니까? 만약에 그렇다고 한다면 정말로 섧은 인생이지요. 불쌍한 인생이지요.

오로지 하느님 한 분 바라보며 그분 오시기만 바랬던 이 늙은 예언자에게 가장 중요했던 것은 하느님의 뜻, 하느님의 자비와 하느님의 속량이 이 땅에 이루어지는 일, 바로 <구원>입니다. 죄를 씻고 허물을 벗고 아버지에게서 떠나왔던 그 날 그 모습으로 정갈히 돌아가기 위한 구원, 이 시간이 나에게 준 상처와 되도 않은 고집과 변명들을 집어치우고, 이제는 참으로 무엇이 중요하고, 이제 유일하게 나에게 남은 희망이 무엇인지를 받아들일 줄 아는 식별과 결단이 있어야지요.

이것을 모르는 사람들은 한 해가 가고 또 한 해가 오는 일이 그저 공짜인 줄 알고 당연한 줄 압니다. 정작 시간 속에 우리가 어떤 성장을 이루어 가야하는지를 모릅니다. 한 해를 맺고 열 줄은 알면서도 그 시간을 무엇으로 채워야 하는지를 모릅니다. 엉뚱한 것 쫓고 엉뚱한 걸 추구하며 엉뚱한 것만 바라보고 있으니 실컷 한 해를 살고 나서도 헛살았다 소리가 나오고, 뭘 성공하고 대단스런 뭔가가 이루어져야 그게 잘 사는 것으로 생각하니 매 해를 마칠 때 마다 후회와 한 숨만 들끓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점지하신 생명과 죽음입니다. 이것을 벗어난 생명과 죽음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엄연한 것을 엄연히 받아들이고, 이 귀하고도 놀라운 시간이라는 은총을 내 삶을 통해 충만한 것으로 바꾸어야 합니다. 생명이 충만하면 죽음도 충만한 것이 됩니다. 생명이 영원하면 죽음도 생명이라는 영원한 가치를 회복합니다.

내가 갈 곳을 알고, 인간의 숙명을 받아들이며, 오늘 이렇게 한 해의 마지막이 오는 것처럼 여지없이 내 삶의 마지막에 당도했을 때 나도 제대로, 답게, 옹골지게 하느님 앞에서 매달리고 성장하고 변화되었던 시간들이 있어야 합니다. 내 것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들은 이 달력들이 찢겨가듯 점차 사라져 갈 것입니다. 내 안에도, 그리고 여러분 안에도 참된 구원이 여전히 아름다운 희망으로 또 한 해 거듭 날 수 있기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4,000년 전 알았던 것을 우리도 알고, 다행히 4,000년전 몰랐던 것 까지도 우리는 알게 되었습니다. 영원한 생명에 대한 희망은 싸움과 폭력으로, ‘징하게’ 살고 ‘엉성스럽게’ 사는 것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다들 열심히는 살았겠지요. 그러나 중요한 것은 제대로 된 것을 바라고 제대로 된 것을 살아내는 일입니다.  

세상이 미혹하고 아령칙하여, 저만 잘 살고 저만 열심히 사는 일만 최고인 줄 알아, 오늘도 경쟁처럼 이 세상을 살아갑니다. 안타까운 일입니다. 이 성탄 시기에 예수의 탄생을 기념해야 하는 동네 이스라엘 가자 지구에서는 민간인 포함 300명이 넘는 살상의 전쟁으로 다시금 사는 일을 아비규환으로 몰아넣고, 지금도 남한 땅 반쪽짜리 대한민국에서는 되도 않은 대통령이 되도 않은 짓꺼리 하느라 싸움과 폭력으로, 그저 힘으로 국민들을 내리누르려고 저 야단법석을 피우는 것입니다.

송년이네 어쩌네 제야의 종소리 친다고 보신각 종탑에 매달릴 일이 아니라 그 종 치는 인간들 자기네 가슴을 먼저 칠 줄 알아야 하고, 제 생명이 귀하면 남의 생명 귀한 줄도 좀 알아 결코 이루어지지 않는 복수네 증오네 미움이네 상처네 집어치우고 올 한 해 금수의 길이 아니라 인간의 길이나마 숙연하게 걸어가자고, 마치 길가메쉬 서사시에 나오는 선술집의 주모처럼, “비결은 무슨 비결, 그냥 술이나 한 잔 걸치고, 조용히 인간의 길로 돌아가시게!” 주문을 외워봅니다.

그렇게 조용히 돌아가는 길목입니다. 다시금 아름다운 희망을 출발시키는 일입니다. 이 희망을 위하여 지나간 일들은 처연하게 받아들였으면 합니다. 내가 잘 했든 잘 못했든, 그가 잘 했든 잘 못했든, 중요한 것은 잘잘못을 떠나 받아들일 줄 아는 일입니다. 남의 잘못도 받아들이면 용서가 되고, 자기 잘못도 받아들이면 반성이 있고 성장이 있는 법입니다.

뭐 자기는 늘 옳고 다른 사람이 늘 틀렸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꼭 보면 세상을 어지럽히고, 사회를 시끄럽게 만들고 가정을 편치 못하게 하는 법인데, 그저 세 치 그 부드러운 혀를 날 선 칼날로 남의 가슴 상처 내는 소리, 내 것, 내 뜻만 고집하는 높은 목청들 실실 낮추시고, 행여나 나 때문에 말 못하고 다친 숨결들 이제는 받아들이고 보살피는 송년의 기도 시간되시기 바랍니다.

이제는 연세들이 높아 이 송년 모임도 못하것다, 하셔서 아마 우리 공동체가 보내는 마지막 송년잔치가 될 듯 싶습니다. 어떻게 한 번 잘 살아보려고 이 먼 곳 독일까지 젊은 신부가 왔는데, 신자들은 하루하루 이가 빠지듯 기가 빠져나가시고, 이 젊은 신부 또한 이거 어떻게 해드려야 하나, 이가 빠지면 틀니라도 해드리고, 기가 빠지면 기라도 막히게 해드릴 텐데, 자꾸만 우리는 안 된다, 힘겨워하시는 모습 뵐 때마다 가슴 먹먹합니다만은, 어찌하겠습니까?

그저 우리에게도 점지하신 마지막 때는 있겠지만, 그 때까지 그저 그런 날 오려나보다, 손놓고 있는다고 또 되는 일도 없을 터이고, 여러분 손수 이 송년잔치 마련하시느라 어제 이미 잔치 마당 준비하시느라 분주하셨던 그 생동감처럼, 나이 많다, 할 것 없다, 해봐야 뭐하것노, 이제는 지발 이런 소리들은 거두시고, 그래도 세상에 있는 동안 내가 더 할 것이 있고, 그래도 사는 동안 내가 더 클 일이 있고 그래도 신앙 안에 내가 더 배울 것이 있습니다. 그렇게 당신 앞에서 마지막 달력을 뜯을 때에는 비로소 이 내 영혼 어린 아이처럼 되어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겠습니다. 아멘! 하고 신앙의 일에 기쁘게 나서시는, 몸은 비록 김정구라도 마음은 서태지다! 오늘 다시 이 땅 밟던 독일의 그 열혈 청년의 심장과 희망으로 부디 거듭나시기를 응원해드리고 싶습니다.

참으로 다사다난했던, 한 해의 끝자락에 서서, 여러분 모두가 참된 것을 받아들이고, 하느님 앞에서의 옹골찬 세월들이 나무의 나이테가 늘듯 그렇게 신앙과 믿음의 나이테도 굵직하게 늘어가시기를 기도해드리겠습니다.  

조웅현 아멘~
늦깍이 신앙생활 신부님 말씀처럼 옹골지게 하느님께 매달리고 변화시켜 나가겠습니다.
  2008/12/31  
요셉 신부님 추운겨울에 교리를받고 새봄에 영세받으면서 새벽미사를 보면서 한주 한주 를 평화의기도를 바치며 지난것이 벌써 2년 ,,,
기억에 남는것은 내가힘들때 더욱절실히 주님을찾는것이었습니다
신부님 덕분에 마음을 기대고 의지할곳있다는것이 행복합니다
새해엔 먼나먼 나라에서 보람있고 행복한 나날을 보네시길 기원드립니다
  2008/1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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