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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님께서 남기신 글 (2009-01-02 04:38:27, Hit : 1056)
<하느님의 오복(五福)> 천주의 성모 마리아 대축일

<하느님의 오복(五福)>

독일에 오시니 좋은 점이 뭡니까? 순진무구하신 눈망울로 저에게 질문하시는 자매님에게 뭔가 적당한 대답을 드려야 하겠는데, 아직 말도 안 통하는 이곳에서 두 달 밖에 안 되었는데 딱히 좋을 것이 뭐가 있겠습니까? 답을 찾느라 망설이고 있었더니 그 자매님, “오늘 밤 신부님, 기대하세요. 독일 사람들이 얼마나 거창하게 새해를 맞이하는지 모른다고, 오늘 밤은 그냥 주무시지 못할 것이라” 호언장담을 하십니다.

아니나 다를까, 저녁 무렵부터 실실 예비군 훈련장에 온 것처럼 여기저기서 총 쏘는 소리가 빵빵 나기 시작하더니, 재야의 종소리 울리는 열 두시가 되자 거리 전체가 난리, 난리, 이런 전쟁통이 없었습니다.

어디서 튀어나왔는지 중공군들도 아니고 쌔까맣게 사람들이 거리에 쏟아져 나와서는 너도 나도 폭죽을 터뜨리기 시작하는데, 하늘은 뿌연 연기로 꽉 들어차고, 여기저기 사람들의 환호성으로 없는 애마저 떨어질 판인데, 그걸 보시던 형제님 한 분 말씀이 “베를린의 질베스터 축제에 쓰는 폭죽 값만 1억 유로를 넘게 쓰는데, 그 축제 때 다쳐서 병원신세 지는 사람만 해마다 500명은 되니, 아마 독일 사람들이 오늘 밤에 쏟아대는 폭죽 값에 치료비에 청소비만 해도 1000억 유로는 족히 될 것이다.” 하십니다.

나쁘고 악한 기운들 이 화약 소리에 놀라 저만치 달아나기를 기원하는 마음에서 비롯된 신년 맞이 축제라지만, 이 불경기에 그래도 독일 경제는 아직은 먹고 살만한가보다, 하늘에 대고 그 많은 돈을 뿌려대고 있으니, 할 무렵, 새해랍시고 인사 전화가 한국에서 왔는데 두 통 모두 우울하기 그지없는 소식들이었습니다.

부산 송정성당이라고 바닷가 일출을 보기 위해 몰려드는 해운대 옆 바닷가 성당의 주임신부가 전화를 넣어서는, 대뜸 작년만 해도 사람들이 신년 해 맞이 보러 온다고 바닷가가 사람들로 넘실거렸는데, 올해는 코빼기도 안 보이니, 민박집 하는 신자들, 횟집하는 신자들끼리 모여 쏘주 한 잔 마시고 들어왔다는 것입니다.

그리고는 걸려온 전화가 남동생의 전화였습니다. 삼성 전자 다니다가 10년 만에 때려치우고 항공기 관련 중소기업으로 직장을 옮긴지 이제 3년이 안되었는데, 그렇게 전망이 좋다던 직장이 올해 들어 경기가 너무 안 좋아져서 지난 연말부터 한 달 간 무급 휴가에 들어갔고 자기는 다른 직장을 알아봐야 하겠다는 것입니다. 곰처럼 우직하게 일만 하며 살아온 동생인데 이제 30대 중반에 실직을 하게 된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영 편칠 않았습니다.

평소에 별로 말도 없는 동생인지라 전화에 대고 뭐라 장황히 늘어놓기도 그렇고, 그저 자식들하고 재수씨 봐서라도 기운 내고, 엎어진 김에 쉬어간다고 니 영혼 돌보는 시간이나 좀 많이 가져라, 하고는 전화를 끊는데 내내 마음이 묵직했습니다.

새 해라는 시간이 우리에게 주는 선물이 있다면 그것은 시간의 새로움입니다. 하지만 그 새로움은 전혀 다른 세상이 우리에게 펼쳐지는 것에 대한 새로움은 아닙니다. 우리에게는 저마다의 묵은 짐들을 고스란히 감당하고 있습니다.

벽에 붙은 달력은 찢어 버릴 수 있을지 몰라도 우리 삶이 가져다주는 저 나름의 묵은 십자가들은 여전히 가슴 한켠에 또아리를 틀고 있는 어쩔 수 없는 일입니다.

안을 보아도, 그리고 밖을 보아도 별반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 2009년입니다. 적어도 경제 상황을 보면 그렇습니다. 전쟁은 계속 되고 있고 돈이 사람을 지배하고 돈 때문에 내팽겨친 시대의 양심과 최소한의 도덕성이 회복될 여지도 별반 뚜렷하지 않습니다. 돈 보다 더 중요한 것들이 정신 가치 안에 있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우리네 정신세계는 그야말로 영적 불구자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보신각종을 친다고 모인 사람들이 제 아무리 저마다의 소원풀이를 하고 독일 수천억 유로를 쏟아 붓는 폭죽을 제 아무리 터뜨린다 하여도, 새로운 한 해라는 시간이 저절로 우리에게 전혀 다른 세상을 가져다 주진 못할 것입니다.

알맹이가 빠져 있으면 제 아무리 그럴싸한 것을 걸쳐도 허무하기 마련입니다. 가장 낮은 곳에서 다시 시작할 희망이 없다면, 가장 힘없는 곳에서 처연히 무릎 꿇을 용기가 없다면, 가장 연약한 곳에서 함께 연민하고 함께 아파하며 묵묵히 그 상처를 보듬어낼 자유가 없다면, 그래서 또 보이는 것, 근사하고 화려한 것, 잘나고 높은 마음들만 치켜 세우는 신년 해맞이라면, 무사무탈을 기원하면서도 결국 다사다난으로 마무리 지어왔던 숱한 한 해들과 다를 바가 없을 것입니다.

우리 가톨릭교회는 새 해를 시작하는 아침을 천주의 모친 동정 마리아에게 봉헌하기를 가르쳐왔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마리아 안에서 어떤 영광과 어떤 성공과 어떤 출세가 있었기에 그녀를 한 해 출발의 보호자로 간택한 것일까요?

그 해답이 오늘 복음 안에 있습니다. 마굿간의 여린 어머니 마리아를 새해를 시작하며 잠시 묵상해보십시오. 마리아에게 어떤 희망이 있었습니까? 조금이라도 긍정적인 상황은 무엇이었습니까? 적어도 하느님의 아들이라고, 그래서 그 이름도 예수, 곧 여호수아, “야훼께서 구원하시리라.”고 이름까지 받았던 그 아들을 겨우 말구유에 뉘일 수 밖에 없었던 젊은 어머니에게, 찾아오는 사람이라고는 길에서 잠들어야 하는 양치기들, 그들만이 찾아와 경배를 할 뿐 아무도 예측하지 못했던 곳에서 홀로 몸을 풀고 있는 이 젊은 여인에게, 우리는 어떤 희망을 발견합니까?

현실은 대단히 변화무쌍한 것입니다. 있다가도 없고, 없다가도 있는 것이 현상세계입니다. 진짜인 줄 알았던 것이 어느날 보면 가짜가 되기도 하고, 부질 없다고 생각했던 일들이 어느날 턱하지 가장 중요한 문제로 대두되기도 하는 것이 현실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 현실의 조건들을 개선하고 그것들이 조금이라도 긍정적으로 변화시키기 위해 무던한 노력을 하였습니다. 옳은 일입니다. 그러나 한 가지가 빠졌습니다. 현실의 변화와 개선 그것만이 행복의 모든 것이라 몰두하였을 때 정작 자기 자신, 자기 존재 스스로가 가지고 있어야 할 행복, 단지 내가 이렇게 존재하고 있음만으로 누릴 수 있어야 하는 기쁨과 감사를 무시하게 된 것입니다.

있어야 행복인 줄 알고, 잘 살아야 축복인 줄 알고, 성공해야 은총인 줄 압니다만은, 그것이 전부가 아닙니다. 최소한 오늘 새로운 한 해를 마굿간의 어머니 마리아에게서 출발하고자 하는 우리들만이라도 이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녀에게 있는 것이라고는 예수 그리스도 밖에 없습니다. 그녀가 잘 살았다고 부를 수 있는 이유도 예수 그리스도 밖에 없고, 그녀 인생의 유일한 성공 또한 예수 그리스도 밖에 없었습니다. 그녀에게는 오로지 연약한 포대기에 쌓여있는 이 말 못 하는 아기만이 유일한 희망이요, 기대요, 바램이었으며, 감사였습니다. 그것이 그녀의 모든 것이었습니다.

허울은 참으로 보잘 것 없었으나, 그녀 속에 참 하느님이 계셨습니다. 이것 때문에 우리는 <천주의 모친>, 죄 많은 인간이 감히 하느님의 어머니라는 칭호까지 얻게 되었습니다. 겁데기는 고작 마굿간의 말구유였으나, 그 속에 하느님의 구원과 영광이 계셨습니다. 이것 때문에 우리는 <구세주의 모친>, 죄 많은 인간이 감히 구세주의 어머니라는 칭호까지 누리게 되었습니다. 목동들, 가장 하찮았던 이들만이 아기와 그 어머니를 알아보았으나, 그들 속에 천상의 소리가 함께 계셨습니다. 이것 때문에 오늘날도 교회는 가장 작은 자들, 가장 겸손한 마음의 이들만이 그 소리를 알아듣고 찾아오는 하느님의 집, 이라는 영광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현실에 우리의 행복을 저당잡히고 살면 1년을 살아도 일희일비(一喜一悲)하기 마련입니다. 삶이 가벼워질 수 밖에 없어집니다. 현실의 있고 없음을 떠나 나의 있음만으로 충분할 수 있는 희망과 감사가 뚜렷해야 합니다. 그러지 않으면 우리는 마리아의 자비를 기원하면서도 결국 마리아가 누렸던 은총이 무엇인지는 모르고 또 엉뚱한 것만 기원할 것입니다.

일생 통해 <하느님 함께 계심>의 복 말고는 그 어떤 복도 누리지 못한 마리아였습니다. 일생 통해, <주님께서 함께 계셨던>, 그 복 말고는 그 어느 복도 누리지 못했던 마리아였습니다. 그러니 최소한 우리가 마리아에게 이 한 해에 대한 기원을 봉헌하고자 모였다면, 우리도 그녀의 복을 함께 누리도록 간구할 줄 알아야 합니다.

하느님 복을 누리십시오. 하느님 복을 간직하고 하느님 복을 청하십시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부자되세요!” 어쩌면 그것 참 부질없는 마약 같은 소리들입니다. 어떻게 모두 부자가 됩니까? 또 모두 부자 되면 진짜 행복해집니까?

이곳 독일 땅 떠나오실 제 한국 경제 국민소득 1000불이 안되던 시절입니다. 지금 2만불 되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지금 조금 힘들게 되었다고 죽네 사네 난리들입니다. 국민소득 3만불 4만불 되면, 행복해집니까? 도대체 얼마나 있으면 행복해집니까? 복 같은 복을 구하지 못하고 엉뚱한 것이 복인 줄 알고 눈앞에 이익만 보고 쫓아다니면 10만불 20만불 되어도 행복하기 어렵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새해에 청하는 복들이 이런 것입니다. 오복(五福)이라고 부르며 오늘 한국의 수많은 절과 예배당에서 주로 기원하는 복들이 이런 것이지요. 첫째가 장수복, 천수(天壽)를 누리고 오래 사는 복입니다. 둘째가 부(富)입니다. 재물 복이지요. 셋째가 강령(康寧)입니다. 편안하게 사는 일입니다. 넷째가 유호덕(攸好德)입니다. 남에게 많은 것을 베풀고 돕는 덕을 쌓는 복입니다. 다섯째가 고종명(考終命)이라고 합니다. 고통없이 편안하게 죽는 복입니다.

주로 세상 사람들 청하는 복들, 오늘 저는 이 복들보다 더 귀한 복, 여러분들에게 나누어드리고 싶습니다. 오래 사는 것만이 복 아니고, 짧게 살아도 하느님 알고 그분 마음에 드는 인생 살았으면 그것도 충분한 지복(至福), 하느님 복이요! 재물 복이 좋은 것이기는 하지만 재물이 들어 사람 망치는 것 또한 너무 많이 보아왔습니다. 재물 때문에 하느님을 잃지 않는 그 복이야 말로 참된 재물 복이요! 편안하게 사는 복이 편해서 오는 복이 진짜가 아니라 하느님 때문에 고통 중에도 웃을 수 있고 슬픔 중에도 희망 잃지 않는 진짜 강령, 하느님이 주시는 평화의 복을 간구해드리고 싶습니다.

이렇게 하느님 복을 제대로 청하는 이에게 베푸는 복 유호덕과 편히 죽는 고종명은 함께 따라오는 <하느님 복 풀셋트>가 될 것은 자명한 일입니다.

우리네 현실을 보면 별반 달라질 것도 없고 새로운 한 해를 맞이 했지만 또 별 다른 새로움이 없어도 좋습니다. 공동체 안에 전례부터 교육, 선교와 재정, 봉사와 홍보, 모든 신심단체와 구역들의 상황이 올 해는 더 나아질 것이 별로 없음을 잘 알공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 루르 본당 모든 신자분들, 오늘 우리 함께 미사를 봉헌하며 부디 하느님 복들을 많이 받으시기를, 그리고 그 복들을 서로서로에게 더 많이 나누어주시기를, 본당 안에서의 일들과 친교들이 조금만 더 마음 열어, “누가 나에게 복 안 주나?” 입만 쩍 벌리고 계시지 마시고, “내가 너희 입에 뭐 하나라도 더 넣어주려는” 그 하느님 복, 서로 먼저 나누고 베푸시려고 작정하신다면, 저는 확신합니다.

2009년도 한 해 우리 공동체는 분명 많은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더 큰 성장을 볼 것입니다. 복 받을 욕심만큼 복 베풀어주십시오. 그러면 받고자 하는 복 뿐 아니라 더 큰 복도 넘치도록 입을 것입니다.

루르 한인 성당 모든 신자 여러분, 부디 기축년 이 2009년 한 해, 다른 복 말고, 하느님 복 많이 받으시고 그 하느님 복, 많이 베푸시기 바랍니다. 하느님 복 많이 받으십시오. 아멘.

조웅현 신부님도 하느님 복 많이 받으세요~
^^*~시로 왈~ 소 뒷걸음질에 쥐잡는해 라고요^^*~
  2009/01/02  
큰율리*^^* 하느님 복...베풀고 나누며 살 수 있음 좋겠습니다.*^^* 중딩 되는 가타리나 좋은 선생님, 좋은 친구들 안에서 행복했으면 좋겠습니다*^^* 광야식구님들 몸도 맘도 하느님 복으로 가득차서 여기서만이라도 행복했으면 좋겠습니다.*^^* 여기서 나눌 수 있는 것도 하느님 복이네요*^^* 건강하이소~~   2009/01/02  
조웅현 신부님 종소리보다 크게 울리던 함성소리 들으셨지요?   2009/01/02  
크리스티나 지난 한 해동안 많은 깨우침과 사랑과 행복의 말씀 감사합니다 올 해도 건강하시고 좋은 말씀 부탁드립니다 광야 형제 , 자매님도 건강하시고 복 많이 받으세요 *^.^*   2009/0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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