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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님께서 남기신 글 (2009-11-14 08:19:36, Hit : 1070)
<궁녀, 영인> 연중 제32주간 금요일

<연중 제32주간 금요일>

<궁녀, 영인>

원나라가 고려에 빼어난 미녀들이 많다하여 처녀나 색시 가운데 어여쁜 처자를 뽑아 보내라는 횡포에 양반집 규수나 민간에서 처녀들을 조사하고 색출하여 원나라고 보내기 시작한데서 유래한 '채홍사(彩虹使)'라는 벼슬 자리는 조선 시대에 이르러 연산군의 방탕한 음욕을 채우는 시녀 역할을 자임합니다.

하지만 이 야만적 유전이 연산군 이후에도 여전히 남아 비(妃)나 혹은 세자빈을 간택하거나 궁녀의 선발에도 이 채홍사 내지는 채청사(彩靑使) 제도가 여전히 활용됩니다. 열 네댓에 궁중에 입궐하여 궁궐의 예법과 절차를 익히고 각자 소임을 맡아 생활하는 것이 궁녀들의 세계인데 이는 그야말로 또 다른 별천지 속으로 떨어지는 일이었습니다.

궁에 입궐하는 순간부터 그 어리고 젊은 여인들은 오로지 하나, 상감의 눈에 드는 것이 목적입니다. 상감의 눈을 들어 내게 한 번 떠 보심이나 그분의 말씀 한 마디 건네시는 총애가 소원이고 언제쯤이면 나에게도 행운이 돌아와 상감의 친절과 시침(侍寢) 소명이 내릴 것인지에 대한 동경과 막연한 기대로 하루하루를 연명하는 인생들로 살아야 합니다. 그러기에 궁녀들의 세계는 질투와 증오, 모함과 중상 등 온갖 요사한 죄악들이 구물거리는 '아수라' 별전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지요.

처녀와 규수를 가리지 않은 연산군 시절에는 말할 것도 없고, 영조 또한 스스로 나인의 몸에 태어나 왕위에 오른 다음 수많은 나인과 상궁들을 건드립니다. 그래서 각기 난 옹주만 해도 아홉이요 나이 팔순에도 손녀와 같은 계비(繼妃)를 들이는가 하면, 그 아들 사도세자 또한 숙빈 임씨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내전의 침방(寢房) 나인인 빙애(朴氏)라는 여인을 가까이 하여 아들 딸을 낳았다가 결국에는 그 여자를 타살하는 등, 가히 범인들은 상상하기 힘든 추악함이 베어든 세월이 조선 궁녀들의 초상이었습니다.

할아버지 영조와 아버지 사도세자의 사음(邪淫)을 일찍이 보며 자랐던 정조 임금 때에 7살 소녀가 채홍사에 선발되어 입궁하게 됩니다. 그녀는 총명하고 남다른 기품이 있어 열 일곱에 이르자 정조 임금의 내전 지밀나인(至密內人), 곧 조석(朝夕)으로 상감 침전(寢殿)에 드나들며 온갖 심부름을 담당하는 직책에 이르게 됩니다.

그야말로 사대가의 규수가 아니라면 한낱 나인의 신분으로서는 최고로 시샘 받는 자리에 오르게 된 것이지요. 하지만 단정함과 총명함 그리고 행신범절 하나하나가 흠 잡을 때 없었던 그녀는 상감의 지밀한 궁녀로 일하면서도 쉬이 범접할 수 없는 기품을 잃지 않습니다.

그녀의 어미가 딸에게 천주교에 입교할 것을 권하자 그녀는 "저도 사실 성교를 믿을 생각은 있으나 궁녀 생활이란 성교를 섬기기 어려운 곳이라, 거기에는 눈만 뜨면 질투, 시기, 모함, 음탕과 추잡한 행위등 여자로서 감히 못할 온갖 죄악을 물마시듯 하는 세상이니, 어떻게 이런 곳에서 성교를 믿을 수 있겠는가? 궁에서 성교를 받드는 것은 도리어 성교를 욕되게 할 뿐이오니, 천주께서 허락하신다면 저에게도 좋은 기회가 올 것"이라며 완곡히 거절합니다.

그러던 어느 날, 상감의 침방 나인이었던 이 궁녀에게 예상치 못한 기회가 찾아왔으니 그것은 다름 아닌 병명을 알 수 없는 병이 생긴 것이었습니다. 혜경궁 홍씨가 수백 명의 궁녀들 중에 유독 신임했던 그녀를 안타까워하여 어의(御醫)까지 보냈으나 병의 갈피를 잡지 못해 결국 휴가를 주어 본가로 치료를 보내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문영인 비비안나가 천주교회에 입교하는 계기가 된 것이지요. 7살에 궁에 들어가 13년 만에 본가에 돌아온 그녀는 본격적으로 천주교 교리를 배우게 됩니다. 그리고 1795년 세례를 받은 영인은 조선 천주교회 초대 여성회장이던 강완숙 골롬바를 도와 젊은 여인들을 가르치고 본인 스스로는 동정 정녀로서의 삶을 살게 됩니다.

그로부터 6년이 지납니다. 정조 임금이 승하하시고 난 후 6개월, 임금을 떠나 미지의 임을 찾아 나선 끝에 천주께 모든 것 내맡기고 남은 여생을 내 님을 위해 살기로 작정했던 그녀에게 들이닥친 것은 천주학쟁이라는 죄목이었으니, 그녀 나이 스물 다섯, 상감의 지밀나인으로 살던 문영인 비비안나가 잡혀 모진 고역 끝에 결국 강완숙 골롬바와 함께 참수형을 받습니다.

<죄인 문영인은 13년간 궁녀 생활을 한 계집으로서 병이 들어 환속하여 병을 치료하였으면 제 부모를 효양(孝養)하지 않고 사도(私道)에 물이 들어 외국인을 신부(神父)라 섬기고 받으며, 심지어는 사대부의 아낙네들까지 그 사도(私道)에 물들게 하고 강완숙의 집에 숨은 외국인을 나라에 알리지 않은 은익보호죄로 사형에 처한다.>

수많은 궁녀들이 임금의 성적 노리개로 전락하거나 오로지 그것이 생의 목적되어 미움과 시기와 견제 속에 늙거나 죽어갔습니다. 하지만 조선의 궁녀 중에는 이렇게 천주를 알아 참으로 모셔야 할 영원한 임금께 온 영혼을 자유로이 봉헌한 이름들이 남아 있습니다. 수많은 궁녀 가운데 이름을 아는 자, 누구입니까?

하지만 하느님 때문에 끝까지 그 이름을 지킨 자, 역사의 페이지 속에 이름 석자 남기지 못했던 그 세월을 탓하지 아니하고 천주를 위하여 끝가지 자신의 이름을 더럽히지 않은 자 또한 엄연히 살아 있는 세상입니다.

어떤 삶을 사느냐? 이것은 어디에서나 가장 중대한 문제입니다. 궁이라는 조직, 결국 온갖 시기와 질투, 음탕함을 덮으려는 야합들이 진동하는 그곳에서도 연꽃은 핍니다. 그리고 다른 모든 것이 사라지더라도 그 향기는 영원히 남습니다.

각자의 삶이 결국 하느님 앞에 서는 것입니다. 누구를 탓할 수도 없고 세상을 탓할 수도 없습니다. 우리는 결국 우리가 선택하고 우리가 결정했던 나의 인생만을 지고 그분 앞에 설 따름입니다. 세상의 눈에 보이는 승리가 영원의 세계에서는 허무이고, 세상의 눈에 보이는 실패가 영원한 승리로 탈바꿈하는 세상을 우리도 만나야 합니다.

결국 자기의 인생을 지고 가는 것입니다. 남의 공이 내 것이 될 수 없습니다. "그날 밤에 두 사람이 한 침상에 있으면 하나는 데려가고, 하나는 버려둘 것이다."(루카 17,34)

한 침상에 있는 두 사람은 부부입니다. 제 아무리 부부라도 하나는 데려가고 하나는 버림을 받을 것입니다. 아내가 열심히 한다고 남편에게 무임승차가 주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남에게 죄 안 짓고 나쁜 짓 하지 않고 사는 것만이 인생의 목적이 아닙니다.

선을 행하지 않는 것, 더 많이 사랑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실천하지 않는 것, 악은 바로 선의 결핍 상태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부디 선을 행하십시오. 그리고 무엇보다도, 내가 지금 무엇을 위하여 이 인생을 살고 있는 것인지를 분명히 하십시오. 그러면 삶이 더욱 선선해질 것입니다.

살아도 사는 것 같지 않은 인생이 세상살이라는 새장을 떠나 하늘을 향해 훨훨 날아가는 꿈, 124위 시복시성 대상자 가운데 문영인 비비안나라는 스물 다섯의 궁녀 출신 동정 순교자의 일생을 쫓으며, 그녀의 꿈을 다시 한 번 꾸어봅니다. 아멘.





요셉 어둠이 벌써 나도 모르게 깔리고 오가는 사람들이 바삐 움직이기 시작하네요
집 이란게 무엇이기에 빨리들어 가고픈 마음이 들어서 인가봅니다
이번주는 정말 어느 주간보다도 버삐움지 였지만 개인적으로 스트레스가 일년중 가장 많은 주간이었습니다
빨리 벗어나려고 해도 자꾸만 끌려서 오게됨니다 이런것이 인생사인지 아픔만큼 클나이도 아닌데 왠지 복잡해 집니다
신부님 마음 단디 먹고 주님이 지켜 주시니 이겨내게 습니다 아멘~
  2009/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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