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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님께서 남기신 글 (2010-08-09 02:33:40, Hit : 1063)
<가벼운 죽음> 김복영 도미니까 장례미사

<김복영 도미니까 장례미사>

<가벼운 죽음>

3.4Kg, 혹은 3.7Kg. 아주 가벼운 몸으로 나
600g 혹은 800g. 더 가벼운 한 줌으로 돌아가는 이 길을 우리는 인생이라 부릅니다.

그 여린 영혼이 수천 혹은 수만 킬로그램의 고민을 하고 엄청난 무게의 고통을 감당해야만 한다는 사실과, 마지막까지 내가 쥐고 있던 그 하나까지도 고스란히 내려놓아야만 다시 왔던 그 몸처럼 가벼워질 수 있으리라는 것을 아무도 가르쳐 주지 않았습니다.

또 가르쳐주지 않았습니다. 어찌하여 내가 살고 싶은 것을 살 수 없는지, 어찌하여 내 뜻은 채워진 적이 없으며, 어쩌자고 이 많은 짐들을 마치 내가 다 처리할 수 있는 나의 것이라 고집하며 살 수 있었던지에 관해서도 누구도 내 귀에 대고 속삭여주질 않았습니다.

그래서 힘이 들었습니다. 20Kg짜리 가방 하나 들고 시작된 무게가 이제는 감당할 수 없을만큼 덩치는 커져갔지만 여전히 또 나는 무언가에 홀린 듯 살아가고 있습니다. 마치 어딘가에 꽁꽁 숨겨둔 행복이 있으리라고, 잔뜩 쥐고도 배고프고 잔뜩 마시고도 여전히 목마른 우리는, 여러 가지 고상한 이유로 스스로를 속여가며, 그래서 우리는 여전히 분주하고 바빠야 합니다.

천천히 가벼워졌으면 좋겠고, 서서히 선선해졌으면 좋겠습니다. 우리가 왔던 무게와 또 우리가 돌아가야 할 무게를 깨달으며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제 아무리 잘 나도 그 무게 이상 잘 날 수가 없고, 제 아무리 가져도 그 무게 이상 가질 수 없음을 수긍하며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떠나가는 모든 생명들이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것은 한가지입니다. 겸손지덕입니다. 생명은 겸손, 곧 제 무게로 살 때 가장 빛이 나는 법입니다. 함께 있어 상처주지 않고 함께 있어 모욕을 가하지 않습니다. 제 풀에 씩씩거려 제 아무리 혀를 휘둘러 보아도 그게 다 제 못남 들쑤시는 일입니다.

겸손하지 못한 생명들이 세상을 어지럽히고 생명을 모욕합니다. 비꼬고 상처주며 놀립니다. 제 삶의 무게를 모르기 때문입니다.

저는 김복영 도미니까 자매에게서 그 어떤 남의 말을 들은 적이 없습니다. 해 하는 말도 싫은 내색도 없었습니다. 소리 내지 않았고 있는 듯 없는 듯 하면서도 오랜 세월 공동체의 봉사를 묵묵히 감당했습니다.

도미니까 자매를 기억하는 사람들의 증언도 일치합니다. 남 말하지 않고 남 탓이 없던 사람. 그래서 그녀와 함께 있던 이들은 평화를 이야기하고 화해를 말했습니다. 세 개의 암이 퍼져 극심한 통증 속에 있을 때도 그녀는 당신의 고통에 대해서조차 이야기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이런 나를 위해 기도해주는 신자들이 너무도 고맙다고, 그게 되려 힘이 든다, 하셨습니다.

누구나 살아온 모습 그대로 가는 법입니다. 그렇게 조용히 홀로 잠드셨습니다. 세상 누구보다도 사랑했던 남편과 어미로서 두 아들에 대한 간절한 마음까지 홀로 감당하시며 떠나셨습니다.

조용한 죽음. 그녀는 그 죽음의 문을 홀로 열었습니다. 천주교회가 말하는 생명으로 넘어서는 그 대문을, 그녀 자신이 가벼웠기에 선선히 넘어설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하느님이 주셨던 애초의 그 무게를 고스란히 하느님께로 돌려드릴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자리 슬프지만 기뻐하겠습니다. 죽음의 그늘진 골짜기를 유유한 학의 날개짓으로 건너가신 그녀의 선선함을 보았기에, 이제야 드디어 모든 짐 내려놓으시고, 지금 우리 사이 사이를 다니며 일일이 인사하고 계시는 그녀의 새로운 생명을 믿고 희망하기에, 장원수 아오스딩, 장보량 아오스딩, 장무량 시몬과 함께 애통해하면서도 우리는 더 이상 울지 않겠습니다.

기도하겠습니다. 그리고 더 큰 희망을 간직하겠습니다. 하느님 당신이 계셔야만 간직할 수 있는 영원에 대한 희망을, 하느님 당신이 계셔야만 감당할 수 있는 죽음의 두려움을, 하느님 당신만이 주실 수 있는 영원한 생명을, 믿겠습니다. 살겠습니다. 그리고 죽겠습니다.

용감한 자, 그리고 선선한 자. 죽음에 용감하고 생명에 선선한 자. 도미니까를 돌려드립시다. 어두움이 아닌 빛으로, 죽음이 아닌 생명으로, 슬픔이 아닌 기쁨으로 다시, 왔던 그 무게로 돌려드립시다.

오늘 아침 몇 개의 꽃잎이 졌고 그 자리에 새로운 이파리라 하늘거리겠지요. 살아 보게 하십니다. 김복영 도미니까를 기억하고 그녀의 죽음을 애도하기 위하여 모이신 여러분. 부디 가벼워지시고, 선선해지시고, 그리고 겸손해지십시오.

이것이 도미니까 자매가 여러분들에게 드리는 선물입니다. 도미니까 자매의 죽음이 가르쳐주는 이 귀한 선물을 지금 깨닫지 못한다면, 우리는 이 선물을 우리 각자의 마지막 침상을 두려워하며 맞아야만 하겠지요.

하느님이 어디계시냐 할 일이 아니고, 먹고 살기 바쁘다 할 일이 아닙니다. 가벼워지지 않으면 가는 길 내내 서러울 따름입니다. 우리의 주인이 우리 생명, 그리고 우리의 죽음과 함께 동행하십니다.

이것을 믿는 자, 그래서 그가 복되고, 그래서 그가 더 귀합니다. 도미니까가 걷는 이 길이 우리들 앞에 놓여져 있습니다. 다른 길 없고 다른 수 없습니다. 다시 가벼워지는 일, 그리고 다시 선선해지는 일에 관하여, 그 선택만이 남아 있을 뿐입니다.

생명을 겸손하게 만드는 죽음, 그 죽음마저도 겸손했던 생명은 반드시 새로운 빛을 볼 것입니다. 그 빛으로 도미니까 자매를 전송하는 아침입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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