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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님께서 남기신 글 (2011-02-03 02:46:36, Hit : 1073)
<돈으로 살 수 없는 것> 주님 봉헌 축일

<주님 봉헌 축일>

<돈으로 살 수 없는 것>

맘에 드는 옷이 있습니다. 맘에 드는 신발도 있습니다. 가게에 가서 돈을 지불해서 옷과 신발을 구매하고 나면 그것은 내 소유, 내 것이 됩니다. 그리고 나는 내 소유물을 통해 만족을 얻으며 내 소유물에 대한 권리를 획득합니다. 그리고 나는 더 많은 소유와 만족과 권리의 획득을 위해 아주 오랜 시간을 노동해야 합니다. 이것이 세상이 돌아가는 경제생활의 원리입니다.

우리는 이런 경제적 질서에 길들여져 있기 때문에 거의 모든 것을 구매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면 서비스도 구매하고 만족도 구매하고 행복과 사랑, 존경과 사람들의 인정까지 모든 것이 다 구매의 대상, 돈으로 살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참 편해졌지만 동시에 불행해졌습니다. 돈이 없으면 하나도 못 사기 때문이고, 그렇게 못 사면 자기 인생이 불행해지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런 방정식은 허술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인생에는 돈으로 못 사는 것들이 너무 많거든요. 아니 돈으로 구매되지 않는 것들이 언제나 더 중요하거든요.  

돈으로 사람을 살 수는 있으나 그 사람의 마음을 살 수는 없습니다.
호화로운 집을 살 수는 있어도 행복한 가정을 살 수는 없습니다.
좋은 침대를 살 수는 있으나 달콤한 잠을 돈으로 살 수는 없습니다.
로렉스 시계를 살 수는 있어도 시간을 살 수는 없습니다.
돈으로 지위를 살 수는 있어도 가슴으로부터 우러나오는 존경을 살 수는 없습니다.

내가 지닌 모든 구매력을 동원해 세상의 모든 아름다운 옷과 사치를 다 살 수 있다할지라도 그것으로 평화와 생명과 구원을 살 수는 없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들에게는 그렇습니다, <구매>라는 방정식이 지닌 허술함이 싫어집니다.

어떻게 해야 우리는 ‘사람’이 아니라 ‘마음’을 사고, ‘소유’가 아니라 ‘행복’을 살 수 있는 걸까? 오늘 주님 봉헌 축일은 이 질문에 대한 해답을 함축하고 있습니다.

세상이 말하는 <구매의 방식>이 아닌 하느님께서 말씀하시는 <봉헌의 방식>으로 인간의 삶을 보고 다른 차원의 행복을 깨닫게 하십니다. 봉헌은 구매의 행위가 아닙니다. 봉헌奉獻은 자발적으로 바치고 희생하는 일입니다. 의무도 아니고 강제도 아닙니다. 말 그대로 스스로 희생하여 내어놓는 일입니다.

그리고 세상은 인간의 구매력에 의해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말하지 않는 자들과 대자연의 묵묵한 봉헌이 있기에 돌아가고 있습니다. 소유를 주장하지도 않고 댓가를 바라지도 않으며 직책이나 보상, 존경이나 명예를 요구하지도 않습니다. 스스로를 내어놓을 뿐이고 조용히 희생하고 있는 뭇 생명 덕분에 인간의 세상은 짐승과 다른 차원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세상은 구매의 능력에 감동을 받거나 존경을 표하지 않습니다. 감동과 존경은 구매의 능력이 아니라 봉헌의 능력에서 우러나오는 것입니다. 권력으로 내리누르는 자들에게 머리를 숙일지언정 존경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스스로를 봉헌하고 자기를 희생한 이들에게는 가슴 깊은 곳에서의 존경과 축복을 보냅니다. 이것이 진짜입니다.

봉헌이 주는 유일한 보상은 <축복>입니다. 봉헌 생활은 축복 생활입니다! 봉헌하는 그 자체가 축복이고, 세상을 산다는 일은 소유하고 점유하고 권리를 주장하는 일이 아니라, 서로 봉헌하고 서로에게 축복을 나누는 일이라는 것을 아는 데에 적지 않은 세월이 걸렸습니다.

그토록 많이 소유하고 그토록 많이 공부했으며 그토록 오래 살았음에도 불구하고 행복하지 못하고 만족하지 못하다면 그는 <봉헌과 축복>이라는 하느님의 방식을 너무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주님 봉헌 축일이 우리에게 알려주는 진실은 이런 것입니다.

인간의 삶을 봉헌의 눈으로 보게 합니다. 모든 것을 드리고 모든 것을 얻습니다. 내 것이기 때문에 행복한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것이기 때문에 내가 비로소 행복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봉헌의 속살이자 이것이 축복의 본질입니다.

봉헌의 눈으로 볼 때 세상은 축복이고 인생은 축복입니다. 한 수도자가 있습니다. 수도자가 되기 위해 오랜 시간 기도를 하고 공부를 했습니다. 가난하게 살겠다고, 정결하게 살겠다고, 순명하며 살겠다고 서원을 했습니다. 그렇게 살면 그 수도자에게는 무엇이 주어지겠습니까?

세상적으로는 대수롭지 않은 것들입니다. 수도복 몇 벌이 지급될 뿐이고 세 끼의 밥이 전부입니다. 존경 받을 수도 있고 혹 세상 어느 곳에서는 무시와 위험을 심각하게 위협받을 수도 있습니다. 그들이 세상에서 받는 축복이라는 것이 참으로 별 것 없습니다.

하지만 세상이 그들에 대하여 모르는 것이 하나 있는데 그것은 바로 봉헌생활이 시작되고 난 이후 그들은 자신들의 삶 모두가 돈으로 살 수 있는 것들이 아니라 봉헌으로만이 살 수 있는 축복이었음을 깨달아간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은 봉헌생활을 하지 않는 사람들은 알 수 없는 것들입니다.

봉헌했기에 나머지 모든 것은 축복이자 덤입니다. 내 것이라 부를 수 있는 것 하나 없어도  불행하지 않아도 되며 불안하지 않아도 됩니다. 산다는 일은 축복임을 이미 알기 때문이고, 이미 그들은 다른 삶의 방식을 찾았기 때문입니다.

수도자가 다르다는 것은 그들이 수도복을 입어서도 아니고, 결혼생활을 않고 독신으로 살기 때문도 아니고 우리들보다 기도를 많이 하기 때문도 아닙니다. 그들은 세상을 이미 봉헌했고 이미 자신을 축복의 눈으로 보며 살 줄을 알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은 우리에게 이런 봉헌 생활의 모범을 일찍이 예수를 통하여, 성모님과 요셉을 통하여, 그리고 예언자들과 사도들을 통하여 보여주셨고, 오늘도 그들의 봉헌생활을 지속하고자 하는 많은 수도자들을 통하여 보여주고 계십니다.

하느님께 드렸습니다. 그리고 모든 것을 하느님으로부터 받았습니다. 이런 봉헌의 생활을 하고 계시는 루르 한인 성당의 남 시메온 수녀님의 봉헌과 축복 생활을 저는 신자분들이 더 많이 본받기를 바랍니다.

봉헌이 곧 축복이라는 사실을 구구절절 설명할 필요 없이, 희생이니 보상이니 사람들의 존경과 인정이니 이런 거창한 소리 늘어놓을 필요 없이, 그저 산다는 일이 봉헌이요, 봉헌생활이 곧 축복생활임을 오늘 축일을 맞으시는 수녀님을 통해 만나시기 바랍니다.

세상 모든 사람들이 탐욕으로 산다면 세상에는 축복이라는 것이 존재할 수 없습니다. 세상 모든 사람들이 제 것을 고집하는 마음, 편히 살고 쉽게 살고 재미있게 살려고만 한다면 세상은 축복이라는 것이 존재할 수 없습니다.

축복은 제 몫을 나눌 줄 아는 자에게서만 나옵니다. 그것이 봉헌이자 그것이 축복입니다. 예수께서 당신을 봉헌하시니 세상은 영원한 생명의 빛을 축복으로 받았습니다. 이것을 제일 먼저 알아본 예언자 시메온의 축일을 축하드립니다. 아멘.

안토니오 그곳의 설풍경이 궁금합니다.
늘 <봉헌의 삶>을 살아가는 모든 성직자에게 주님의 축복과 은총 가득하기를 기원합니다..
조신부님! 오늘 행복한 설명절 맞으소서~
  2011/02/03  
요셉 신부님 떡국은 잘드셔는 지 긍금합니다
오늘강론을 숙독하면서 저의 지난 시간을 반성하는 계기를 주심점에 감사 드립니다
오늘 뉴스엔 사회지도층 누가 외로운 이의 방문을 하였다는 글귀한줄 안보이는 요즘 시대입니다
저또한 마찬가지 입니다 오늘 안드레아 형님께서 요셉의집 떡국 봉사하신다는 말씀을 듯고는 가슴찡... 같이 못도와 드린점 죄송 ,,
책장에서 무소유 책을 다시 꺼내여 숙독 하도록 하겠습니다
광야 가족 형제,자매님 댁내에 주님의 은총이 가득하시길 기도 드립니다 아멘~~
  2011/0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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