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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야소리 님께서 남기신 글 (2004-04-16 19:12:02, Hit : 1054)
혼인과 이혼 - 연중 7주간 금요일

<연중 제7주간 금요일 강론>

이혼에 관하여 새삼 유난을 떨 것은 없지만 정리를 위해 간단히 알아보았습니다.

우선 작년 3월 통계청이 발표한 자료에 의하면, 2001년 결혼은 모두 32만쌍이 하였고 이혼은 13만 5000건, 즉 세 쌍이 결혼하면 한 쌍은 이혼을 하는 정도의 수준에 이르렀습니다. 물론 전체 부부 숫자에서 따지자면 비율은 현저히 떨어질 것이나, 이 마저도 이혼율에 있어 일본이나 유럽의 여타나라보다 우리가 월등히 높습니다.

미국, 뉴질랜드, 영국과 호주 다음으로 이혼율에 있어 우리나라는 이미 선진국의 수준을 넘어서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맨날 이런 걸로만 1등을 하려는지 모르겠습니다.

여하튼간에 한해 13만 5천쌍이 이혼을 한다면, 부부니까, 27만명, 그리고 자녀가 둘만 있었더라도 54만명, 그들의 부모나 형제를 포함한다면, 그야말로 한해 백만명이 넘는 사람들이 가족의 이혼으로 인한 고통을 감당하고 있다는 이야기가 됩니다.

무엇보다도, 결혼 20년 이상 된 부부의 이혼이 전체 이혼의 11%를 넘어서고 있는데, 이는 지난 10년 전과 비교하자면 3배나 증가한 수치라고 합니다.

예전에는 그래도 여자들이 자식보고 참고, 돈 없어서 참고 살아왔는데, 이제는 세상이 달라져 여자가 남자보다 더 능력이 있는 세상이 되다보니 남자들이 더듬하게 했다가는 이혼당하기 딱 좋은 시절이 왔습니다.

TV프로그램에도 이혼의 여부를 묻는 프로가 인기를 끌고, 드라마도 이혼과 불륜이 나오지 않으면 잘 쳐다도 안보는 세태 속이지만, 아무리 그런 세상이라고 해도 물어야 할 것이 있을 것 같습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약속입니다. 결혼은 애초 약속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약속은 상대방이 지키면 나도 그를 사랑하고, 상대방이 지키지 않으면 나도 파기시키겠노라는 약속이 아니었다는 사실입니다. 약속의 발단은 그 사람이었는지 몰라도, 약속 그 자체에 대한 신의는 나의 다짐이었음을 우리는 다시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나는 당신을 내 아내, 내 남편으로 맞아들여 즐거울 때나 괴로울 때나, 성할 때나 병들거나 일생 신의를 지키며 사랑할 것을 약속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한 줄의 약속으로 서로가 서로를 평생의 동반자로 삼을 것을 약속했습니다.

서로가 서로를 통해 덕만 볼려고 합니다. 그러면 반드시 싸움이 생길 수 밖에 없고 불평이 생길 수 밖에 없습니다. 한 쪽은 손해를 보아야 하는데, 양 쪽이 덕만 볼려고 덤비니 조용할 턱이 없습니다.

혼인은 덕 보겠다는 약속이 아니었고, 그 사람에 따라 좌지우지 되는 그런 약속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사업상의 계약관계이지요, 장사이지요. 결혼은 애초 그런 것이 아니었습니다.

하느님께서도 우리를 보고 우리를 사랑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당신께서 애초 맺으셨던 그 계약 때문에, 그 약조 때문에, 그 약속에 충실하시기 위해서였습니다. 우리가 죄를 짓는다고 우리를 버리시는 하느님이 아니셨고, 우리가 당신을 잊었을지언정 당신은 우리를 포기하지 않으시는 그런 하느님이십니다.

혼인이라는 약속은 하느님의 이런 약속과 닮았습니다. 그래서 천주교는 혼인을 성사라고 부릅니다. 하느님의 모습을 닮은 거룩한 일말입니다.

하느님의 이 약속을 도리어 우리가 너무 쉽게 버리는 것은 아닌지, 그 인간 때문에 못 살겠습니다가 아니라, 그 약속 때문에라도 살아야 하는데, 힘이듭니다.로 우리의 하소연이 바뀌어야 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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