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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님께서 남기신 글 (2005-08-30 10:58:31, Hit : 1054)
<북망산이 코앞이거늘> 한순애 마리아 장례미사

<북망산이 코앞이거늘>

“헛되고 헛되다. 세상만사 헛되다. 사람이 하늘 아래서 아무리 수고한들 무슨 보람이 있으랴! 한 세대가 가면 또 한 세대가 오지만 이 땅은 영원히 그대로이다. 세상만사 속절없어 무엇이라 말할 길 없구나. 아무리 보아도 보고 싶은 대로 보는 수가 없고 아무리 들어도 듣고 싶은 대로 듣는 수가 없다. 그래서 나는 산다는 일이 싫어졌다. 모든 것은 바람을 잡듯 헛된 일, 힘껏 애써 얻어 보아야 결국 다음 세대에 물려주어야 하는 것, 그래서 나는 하늘아래 수고한 모든 일을 생각하고 싶지 않고 돌아보기도 싫어졌다. 지혜와 지식을 짜내고 재간을 부려 수고해서 얻은 것을 아무 수도고 하지 않은 사람에게 남겨주어야 하다니, 이 또한 헛된 일이며 처음부터 잘못된 일이다.”(전도 1,1.2.4.7;2,17.18.20)

이 세상 태어난 목숨 모두가 행복하고 싶은데, 불행하게 살고 싶어서 태어난 목숨은 하나도 없는데 그런데도 세상에는 불행한 사람들이 너무도 많습니다. 아프고 싶지 않으나 아파야 하는 목숨이고, 가난하고 싶지 않으나 가난해야 하고, 고통 받고 싶지 않으나 고통당하며 살아야 하는 인생입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무엇 때문에 왜 났는지도 모르고 이렇게 악다구니를 쓰며 살아야 합니까? 잘 살아볼라꼬... 남들만큼 살꺼라고 내 평생이 바쁘고 이 허리는 다 휘어져 가지만 언제 제대로 한 번 행복하게 살아 보았노라는 기억마저도 가물가물합니다. 왜 사는지도 모르고 살아버린 세월이 쌓이고 쌓이면 가슴 한 줄기 상처도 늘어가고 그 상처들 때문에 사람이 갈수록 모질어지는 법입니다.

부질없는 것에 목을 매 살다보니 부질없는 일들만 늘어가고, 앞만 볼 줄 알았지, 내 옆도 못보고 내 뒤도 못 돌아본 채 살아버린 세상 탓에 이렇게 갈 때가 되면 떠나는 걸음도 만만칠 않습니다.  

한순애 마리아 자매님. 너무 불쌍하신 분이십니다. 너무도 외로우신 분이십니다. 그녀를 지켜주었던 그늘 하나 없었고 오직 그녀를 줄기차게 부여잡았던 것은 질긴 목숨 줄 하나뿐이었습니다.

당신 말씀 마따나 먹을 것 안 먹고, 입을 것 안 입고 이 돈이 평생의 상처가 되어 악착같이 움켜쥐고 살았지만, 당신은 떠나던 그날까지 맘 편히 당신 몸에 써보지도 못하셨습니다. 과거의 상처에 매여 있었고 당신 죽음 뒤의 일들에 매여 있었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여전히 불행하기만 했습니다.  

수녀님의 도움으로 시립병원으로 옮겼을 때, 저를 만나고 싶다하여 찾아갔습니다. 이제 얼마 남지도 않아 당신 갈 길 잘 정리해야 하는데, 자매님이 주섬주섬 작은 보따리를 챙기십니다.

“그기 뭡니까?” “이거 누가 들고 가면 안되지라...”
“뭔데요?” “지 통장들입니다”
“그걸로 뭐할려구요?”
“죽으면 써야지요... 내는 불이 무서워서 화장도 하기 싫고 자식도 없으니 내 묫자리 돌봐줄 사람도 없어서 이 돈 써서 좋은 땅에 묻히고 사람 사서 내 묘 관리도 부탁해야 하고, 내가 살아 기도도 많이 못하고 신앙생활도 안했으니 죽어 나를 위해 평생 미사를 넣을 곳도 알아봐야 하고, 또 나처럼 불쌍한 사람들 내 이름으로 좀 도와주고 싶은데, 배운 것이 짧아서 어떻게 해야할지도 모르겠고...”

죽어가는 자매님에게 여전히 ‘오늘’은 없었습니다. 오로지 내일 어떻게 해야하나... 만 남아있었습니다. 살아 쓸 줄을 몰랐으니 죽어 쓸 수도 없는 노릇. 모진 일 다 당하고 모진 설움 다 당하고 이제 정신차려 고갤 들어보니 북망산이 코앞이라 그 마음 바쁠 듯 한데도 자매님은 여전히 놓지도 못하고 쥐지도 못하고 그렇게 어정쩡히 서 있기만 했습니다.

이 설움을 어이할꼬? 이 여한을 어이할꼬? 세상 사 조용히 났으니 조용히 살아지면 그만이라지만, 그래도 하느님께 생명 받아 주먹 불끈 쥐고 태어났을 적엔 뭐라도 한 줄 남길 수 있어야 하는데, 그것 하나만 바라보고 여지껏 쫓아온 숨 줄인데, 자매님과 만나고 돌아오던 저의 마음은 그야말로 천근만근이었습니다.

그냥 좋은 약 한 번 원 없이 써보시라고, 그동안 맘 편히 못 자셨던 것 실컷 한 번 드셔보시라고 말씀드리고 싶었지만, 자매님의 황망하기 이를 데 없는 눈빛을 보며 차마 그 소리가 안나왔습니다.

그래요. 자매님. 하늘을 생각하면 원망할 일이 어디 한두 가지겠습니까? 이런 부모, 이런 형제, 이런 남편, 이런 자식... 땅을 봐도 답이 없고 하늘을 봐도 길이 없지만, 그래도 하느님 빼고 나면 무엇이 남던가요?

세상 어느 부모가 내 자식 불행하게 살으라고 새끼 놓는 어미가 어디 있을 것이며, 너는 눈물 진흙탕 딩굴다 죽거라...하고 내 놓는 아비가 어디 있겠습니까? 죄 많은 인간도 그런 맘으로 자기 자식 안 놓는 법인데, 하느님이라면 오죽하시겠습니까?

분명히 이 모든 것이 뜻있을 것입니다. 내가 이리 모질게 살아온 인생도, 내가 이리 내 뜻대로 못하고 다시 또 돌아가야 하는 목숨도 다 뜻이 있을 것입니다. 다만 어리석어, 그것을 늦게 깨치고, 다만 무지하여 죽기 전까지도 붙들고 앉아 있으니 탓하려면 그것을 탓해야겠지요.

내 맘 같은 이 하나 없고, 내 속 다 아는 이 아무도 없어도, 제 아무리 내 부모도, 내 형제도 나를 모른다 하여도, 어떻습니까? 하느님은 그 모든 것 다 아시지 않습니까? 하느님 때문에 났고 하느님 때문에 살고 또 하느님 때문에 가는 것 아니면, 어디 정답이라 부를 것 하나라도 있던 생명이던가요?

사람 사는기 정 빼면 남는 기 없고, 사람 죽는데 하느님 빼면 또한 남는 것이 없습니다. 돈이 무슨 소용이고 자식이 무슨 소용입니까? 그저 하느님으로부터 났으니 하느님께로 잘 돌아가면 됩니다.

마지막으로 지난 토요일 찾아뵜을 때, 퀭하니 구멍 뚫린 것 마냥 황량한 시선으로 저를 바라보시던 그 마지막 눈길이 내내 지워지질 않습니다. 조용히 그 두 눈 감게 해드리고 싶었으나, 당신 바램은 여전히 남았나 봅니다.

이제는 하느님께 잘 맡기시지요. 내 설움도 맡기시고, 내 여한도 맡기시고, 세상사람 아무도 모르는 내 눈물도 잘 맡기시지요. 그리고 이제는 고마 가자... 하시는 그분 뒷손 잘 붙드시고 일어나십시오.

유가족 여러분. 동생 위해, 그리고 누나 위해 기도해주시기 바랍니다. 나도 힘들었지만, 홀로 있던 이 사람은 오죽 더 했겠습니까? 피 한 방울 튀었다고 형제가 아니라 그 나눈 정 있어야 형제 아니던가요?

행여나 여지껏 나누지 못하신 정들 있으시다면, 그저 그 뜻 잘 이어주시고, 그저 그 정 이제라도 잘 베풀어주셔서, 이리 떠나는 걸음 하느님 품에 잘 도착할 수 있도록 기도나 뜸뿍해 주시기 바랍니다.

하느님은 아십니다. 그래서 하느님입니다. 그래야 하느님입니다. 그분 없이는 이렇게 살아야 하는 우리 섧은 목숨에 답이 없습니다. 이제 우리 공동체도 한순애 마리아 자매의 영혼과 육신을 그분께 맡겨드리고자 합니다.

빈손으로 왔다가 다시 빈손으로 돌아가는 일, 그러나 우리는 믿습니다. 그 빈손마저도 당신이 계시다면 가득 채운 사랑이라는 사실을, 그러나 우리는 믿습니다. 억울하게 흘린 눈물도, 섧게도 삼킨 모짐도 이제 그분 계시기에 답이 있고 길이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믿습니다.

그 믿음 하나만 보고 우리는 오늘 한순애 마리아 자매님을 보내고, 또 여기 모인 우리 모두도 그 믿음 하나만 보고 이 뒤를 머지않아 따라갈 것입니다.

한순애 마리아 자매님. 더 자주 찾아뵙지 못해 정말로 죄송합니다. 부디 저도 용서해주시기 바랍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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