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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야소리 님께서 남기신 글 (2004-04-16 19:18:34, Hit : 1073)
천국과 지옥 - 사순 제4주일 강론

<사순 제4주일 강론>

<천국과 지옥>

빛과 어둠에 관하여 이야기합니다. 함께 살아 빛이 되는 사람에 대하여 이야기하고, 함께 살아 어둠이 되는 사람에 대하여 이야기합니다. 처음부터 빛이었던 사람도 없었고, 처음부터 어둠이었던 사람도 없었습니다. 처음부터 빛이었던 존재는 다만 하느님뿐이시고, 처음부터 어둠이었던 존재 역시 다만, 마귀일 따름입니다.

요한은 빛과 어둠의 기준을 예수그리스도라고 고백합니다. 처음부터 빛이 아니라, 처음부터 어둠이 아니라, 과연 예수그리스도를 믿는가 아닌가에 따라, 빛과 어둠은 구분된다고 고백합니다. 그 안에 예수그리스도가 살아계시다면 그는 빛의 사람이요, 믿는다고 하면서도 그 안에 예수그리스도가 살아계시지 못하다면, 그는 여전히 어둠에 속한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우리는 저마다의 빛을 지니고 살아갑니다. 우리는 저마다의 향기를 지니고 살아갑니다. 때로는 삶이라는 고통에 짓눌려 내 안에는 한 줄기의 빛도 없이 그저 앞이 캄캄하기만한 어둠들, 막막하기만한 어둠들만 꽉차있었던 적도 많았었지만, 우리는 그 어둠에 질식당하지 않고 다시 빛으로 걸어나올 수 있었습니다.

지금 죽도록 괴롭고, 아니 더 이상 살기도 싫을만큼, 딱 죽고만 싶으신 분이 계시다면, 잠시 정지하십시오. 그리고 여러분의 그 인생여정을 되돌아보십시오. 분명히 그 속엔 지금보다 더 힘들었던 기억이 들어있을 것입니다. 그냥 이 삶을 끝내버리고 싶었던 기억들 말입니다. 도무지 내 힘으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을 것만 같았던 그 순간마저도 어떻습니까? 어찌 어찌 빠져나오지 않았습니까? 어찌 어찌 다시 올라오지 않았습니까?

영원할 것만 같던 고통도 사실 없었고, 끝까지 이어지는 기쁨도 사실 없습니다. 모든 것은 오르막과 내리막의 연속들입니다. 좀 살만하다 싶으면, 반드시 그것을 앗아가는 고통 한가지가 따르게 마련이고, 이제 딱 죽겠다 싶으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붙잡아야만 하는 희망 한가지는 반드시 따라오게 마련입니다.

우리 모두는 이렇게 빛과 어둠 사이를 오가며 살아갑니다. 문제는 내 안의 빛을 내가 스스로 부정할 때, 발생됩니다. "빛이 세상에 왔지만 사람들은 자기들의 행실이 악하여 빛보다 어둠을 더 사랑했다. 이것이 벌써 죄인으로 판결 받았다는 것을 말해준다."

이것이 무슨 말씀이겠습니까?

소록도에 가면 나환자 어르신들이 계십니다. 똑같은 고통으로, 성한 저의 입술로는 이루 말할 수도 없는 그 지독한 고통을 7-80 평생 앓아오신 어르신들이 계십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나환자라고 모두 불행한 것이 아닙니다. 그 안에 가면, 당신들 스스로, 그 문드러진 입술로 나는 정말로 하느님께 감사합니다. 라고 고백하는 어르신도 계십니다. 이 병이 아니면 나는 하느님 찾지 않았을꺼라고, 그래서 나에게는 이 병이 형벌이 아니라 도리어 축복이라고 말씀하시는 어르신도 계십니다. 정말 그렇게 말씀하시는 분들은 행복해 보이십니다.

그들에게는 아무것도 없으십니다. 오직 하느님말고는 아무것도 없으신 분들이십니다. 돈은 말할 것도 없고, 건강은 말할 것도 없고 가족은 말할 것도 없고 그야말로 하느님에 대한 믿음, 매달림이 전부인 분들입니다. 그런 분들을 찾아가면, 하루종일 당신이 받은 은총에 대한 감사의 이야기만 들어야 합니다. 그 이야기를 듣다보면 함께 나병에 걸리고 싶을 정도로 그 참혹한 고통 속에서도 빛이 환한 사람들입니다. 오직 하느님만이 계신 곳이 천국이라면, 그들은 이미 천국에서 사는 분들이십니다.

물론 이런 분들만 계시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그곳에는 이런 분들과는 정반대로 정말 불행한 분들이 계십니다. 그분들은 여전히 나병을 앓고 계신 분들입니다. 여전히 나병이라는 엄청난 고통을 이겨내지 못해 여전히 불행하고, 여전히 천벌을 받고, 여전히 쥐어짜고 앉아있는 어른들도 참 많이 계십니다. 이 분들에게 가면 불평과 불만의 소리를 하루종일 들어야 합니다. 원망과 원한의 말씀을 하루종일 들어야 합니다. 무얼 해드려도 감사함을 모르십니다. 늘 부족하고, 늘 모자라는 분들이십니다. 어둡고 음습한 곳에 쭈그리고 앉아 불행만 쌓아가는 사람들... 그들은 이미 지옥에서 사시는 분들이십니다.

똑같은 고통을 겪고 똑같은 불행을 겪어도 누구는 그 엄혹한 고통 속에서도 천국을 사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누구는 여전히 지옥 속에 남아있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은 상당히 중요합니다. 똑같은 질병 속에서도 누구는 불행하고, 또 누구는 행복하다는 사실... 이 속에 이 세상에 존재하는 고통의 해법이 있습니다.

이것이 벌써 죄인으로 판결 받았다는 것을 말해준다...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천국이나 지옥은 내 삶의 결과로서 심판을 받는 상황이라기 보다, 이미 내가 지닌 삶에 대한 태도 그 자체를 두고 하는 말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자신이 선택한 삶에 대한 태도, 자신이 선택한 삶에 대한 상태가 바로 천국이요, 그 자체가 바로 지옥이 아닌가 저는 생각합니다.

따라서 천국이나 지옥은 판결의 문제가 아니라 선택의 문제인 셈입니다. 그렇다면 모두가 천국을 선택하면 될 터인데, 무엇이 문제입니까? 하지만, 문제는 모두가 천국을 원하면서도 실상은 그 천국의 의미를 제대로 깨닫지 못하고 있다는데 문제가 발생합니다.

천국이 무엇이겠습니까? 천국이 꽃 피고, 상다리가 휘어지도록 먹을 것이 넘쳐나고 풍악이 울리는 그런 곳이 천국이겠습니까? 확실한 것은 천국은 하느님과 함께 있는 공간, 오직 하느님이라는 기쁨만이 존재하는 상태를 두고 천국이라 하지 않겠습니까?

그렇다면 지옥은 무엇입니까? 지옥은 유황불이 타오르고, 도깨비 방망이에 쇠사슬 가득한 감옥생활이 지옥이겠습니까? 확실한 것은 지옥은 하느님을 볼 수 없는 공간, 하느님을 영원히 만날 수 없다는 사실이 가장 큰 슬픔이자 아픔인 상태를 두고 지옥이라 하지 않겠습니까?

자, 이렇게 천국과 지옥이라는 구분이 하느님의 계심과 계시지 않음으로 확실히 구분할 수 있다면, 하느님이 나에게 세상의 그 어떤 것보다 기쁨이 되고 있는가? 아닌가? 하느님 없이도 나는 기쁜 것들이 많은 사람인가? 아닌가? 에 따라 구분지을 수 있다면, 천국이라는 빛과 지옥이라는 어둠은 굳이 죽어서 판결 받아야 할 문제이기 이전에 이미 살아 있을 때, 내가 과연 어떤 태도와 선택을 지니는가에 따라 이미 천국생활을 하고 있는 사람과 이미 지옥생활을 하고 있는 사람으로 나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지지리 가난하고 병들고 외로우면서도 나는 하느님이 계시기에 행복합니다. 하고 말할 줄 아는 사람은 이미 천국 생활이 무엇인지를 아는 사람일 것이고, 잔뜩 쥐고, 잔뜩 먹고, 잔뜩 누리고 있으면서도 언제나 부족하고, 언제나 불평과 불만이 끊이질 않는다면, 그리고 그 속에 하느님이 계시지 않는다면, 그 자체가 바로 지옥생활이 아니겠습니까?

교형자매 여러분, 그리고 청년 여러분.
천국과 지옥은 심판의 문제 이전에 선택의 문제입니다.

"좋습니다. 나는 오직 하느님만을 선택하겠습니다.
좋습니다. 나는 오직 하느님이라는 기쁨만을 선택하겠습니다.
좋습니다. 나는 오직 하느님이라는 희망만을 선택하겠습니다."
이 사람은 지상에 살면서도 천국을 선택하고, 또 실제로 천국에서 사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말로는 천국을 선택한다고 하면서도 나는 하느님으로 인한 그 어떤 즐거움도, 하느님 때문에 기인하는 그 어떤 삶의 목적도, 삶의 변화도 체험하지 못한채 하느님이 있으나 없으나 내 삶이 똑같다면, 그 상태자체가 바로 지옥의 삶과 하나도 다를 바가 없는 사람입니다.

살아, 천국에서 살아야, 죽어, 천국가는 길을 알 수 있습니다.
살아, 매일이 지옥인데, 어찌, 죽어, 천국을 찾아갈 수 있겠습니까?

믿습니다. 하면서도 맨날 지옥이라고 하소연하시는 분들... 천국을 선택하십시오. 하느님이라는 빛을 선택하십시오. 그러기 위해서 내 뜻이 숨어있고, 나의 탐욕이 가득찬 내 안의 어둠을 포기하십시오. 내가 세상 것들로 꽉차 있으면 하느님이라는 빛은 왜소하기 그지없습니다. 그냥 훅하고 불어 꺼버릴 촛불마냥 위태롭게 나는 하느님을 믿고 앉아있는 셈입니다.

그런 하느님은 조금의 고통, 조금의 바람만 불어도 내 안에서 꺼지고 말 것입니다. 신앙심이 약합니다. 하고 신앙타령하지 마시고, 내가 이 세상에 붙들어 매놓은 갖가지 그물들부터 먼저 걷어내십시오. 믿습니다. 하면서도 우거지 만상으로 사시지 마시고, 믿습니다. 라는 뜻이 뭡니까? 믿기에 맡깁니다. 하는 소리 아닙니까? 말만 하지 마시고 좀 맡겨보십시오.

내 뜻대로 안되면 어떻하나 쫄고 앉아서야, 어이 믿는다 하겠습니까? 그것은 믿는 것이 아니고, 양다리 걸치는 것입니다. 믿는다, 선택한다, 하였으면, 이제 맡길 일입니다. 내 맡기고 쳐다볼 일입니다. 구리뱀을 만들어 그것을 쳐다보는 사람은 모두 목숨을 건졌다하였습니다. 구리뱀은 바로 십자가입니다. 저 십자가가 내 인생의 빛이 되게 하시고, 내 생명의 목적이 되게 하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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