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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님께서 남기신 글 (2011-08-17 16:45:35, Hit : 786)
<한반도 평화통일 기원 미사> 강우일 주교님

<한반도 평화기원 미사>

강우일 주교    
  
6.25전쟁이 있은 지 벌써 60년이 지났습니다. 한국전쟁은 두 차례 세계대전을 제외하고 이 지구상에서 바 일어난 전쟁 가운데 가장 참혹한 전쟁이었습니다. 베트남전쟁은 1955년부터 75년까지 20년 동안 전투가 이뤄졌는데 희생자가 150만 명 정도라고 합니다. 한국전쟁은 불과 1950년에서 53년까지 불과 3년 동안 벌어진 전쟁인데 200만 명 정도가 죽었습니다. 이런 처참한 전쟁으로 그 상처가 너무 깊었던 탓인지 한반도는 아직도 이 지구상에서 유일하게 분단된 민족으로서 서로를 적대시하면서 무려 248킬로에 달하는 군사분계선을 그어서 양쪽에 엄청난 가공할 무기를 배치하면서 24시간 대치하고 있습니다.

어떤 이유도 어떤 이념이라도 전쟁은 안 돼

아무리 국가 이름을 내걸고 어떤 고상한 이념을 내세워도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수백만 명의 인명을 무차별 살해하고 헤아릴 수 없이 수많은 사람들의 몸과 마음을 평생 불구로 만드는 전쟁이란 결코 정당화될 수 없습니다. 인간이 저지르는 행위 중에 가장 우매하고 용서받을 수 없는 야만적이고 비윤리적인 행위가 바로 전쟁입니다. 이 지구상에서 어떤 이유의 어떤 형태의 전쟁도 사라져야 합니다.

금년 6월 들어서 한 가지 생각이 자꾸 머리를 맴돌고 있습니다. 왜 하필 이 땅에, 이 좁은 한반도에서, 불과 3년이란 기간에 그렇게 많은 희생자를 낸 전쟁이 터져버렸을까? 지금도 남북이 같은 민족이라면서 서로 통일을 외치면서도 양쪽에서 온갖 미사일과 대포를 줄줄이 쌓아놓고 언제라도 발포할 태세를 갖추고 있는 것은 도대체 왜 그럴까? 이런 의문이 제 마음속을 떠나지 않습니다.

역사가들은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일본이 패망하면서 미국이 대표하는 자유민주주의 세력과 소련이 대표하는 사회주의 세력이 한반도에서 패권을 차지하려고 격돌하다가 결국 그 전쟁이 터졌다고 설명합니다. 틀린 이야기는 아닙니다. 그러나 이 자리에 모인 우리는 신앙인의 입장에서 하느님의 자녀로서 이 일을 어떻게 알아듣고 어떻게 소화해야 할지 우리 스스로 고민하고 자문해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이 땅에 그렇게 참혹한 일이 일어나도록 허락하신 하느님의 뜻은 무엇이었을까? 선하신 하느님은 왜 이런 비극이 이 민족에게 일어나도록 내버려 두었을까? 하느님께서 이 비극을 통해 우리 민족에게 무엇을 원하고 계실까? 이 넓은 지구 땅덩어리에서 이 한반도에서 유례없는 참극이 일어나 까닭은 무엇 때문일까? 이 전쟁은 3년의 전쟁으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625가 끝난 지 60년이 된 오늘에도 이 한반도에는 1천만 명의 이산가족들이 서로를 애타게 그리워하면서 눈물을 짓고 있습니다.

우리 북한 동포들의 고통을 생각하면 정말 가슴이 답답해지고 심장이 조여드는 느낌입니다. 1990년대 홍수 피해 이후에 3백만 명 이상이 양식이 없어서 목숨을 잃어가고, 지금도 해마다 세계가 식량지원을 하지 않으면 수많은 사람이 영양실조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합니다. 가끔 기록영화를 통해서 피골이 상접한 북한 어린이들이 맨발로 시장바닥을 헤매면서 쓰레기통을 뒤지는 고아들을 보면 너무도 마음이 너무 아픕니다. 그뿐 아닙니다. 목숨을 걸고 탈북한 수많은 여성들이 중국 땅에서 자기 몸을 노리개로 내던져서 목숨을 연명하고 있습니다. 중국대륙을 사방으로 헤매다가 동남아 태국 베트남까지 내려가서 한국으로 들어올 길을 찾고 있습니다. 하느님은 고통 받는 이들을 사랑하고 돌보시는 분이신데 지금 세상에서 가장 이렇게 불행하게 살아가는 동포들의 신음은 왜 못 들은 척 그냥 보고만 계실까? 하는 생각이 가슴속에서 계속 울려옵니다.

하느님이 세상을 사랑하시는 방법

사람들은 어떤 부류의 사고나 재앙을 당하면 즉시 자신이 저지른 죄에 대해서 하느님께서 벌을 내리신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합니다. 우리 민족이 유난히 죄가 많아서 하느님께서 벌을 주신 게 아닐까? 그러나 우리가 믿는 하느님은 그런 소인배는 아니십니다. 하느님께서 인간들이 저지르는 죄악에 대해 그때그때 벌을 주고 징벌을 내리셨다면 아마 이 지구는 그동안 수십 번은 멸망해도 부족했을 것입니다. 하느님은 인간의 구원을 원하시는 분이시지 멸망을 원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요한복음 사가는 말합니다. “하느님은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당신 외아들마저 내어주시어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셨다.” 하느님께서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시려는 것이 아니라 세상이 아들을 통해 구원을 받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이 세상의 구원을 위해 파견하신 외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당신의 백성들이 달려들어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는 그런 꼴을 보셨습니다. 당신의 외아들이 억울한 누명을 쓰고 이방인들의 손에 넘겨져서 채찍질 당하고 손발이 꿰뚫리면서 숨이 끊어져 가는데도 하느님께서는 아무런 개입을 하지 않으셨습니다. 아니 못하셨습니다.

당신의 아들 예수가 일찍이 세상의 어떤 인간도 바친 적이 없는 진실한 제사를 바치시고 계셨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죄, 모든 이의 죄를 대신 당신 한 몸으로 짊어지시면서 대신 용서 받기 위해 당신 목숨을 제물로 봉헌하고 피를 흘리신 참으로 아름다운 사랑의 제사를 봉헌하고 계셨기 때문에 하느님께서는 그 성자의 제사를 마다하지 않으셨습니다. 이 때에 하느님 아버지께서도 하늘 위에 따로 계시지 않고 갈바리아에서 아드님 예수와 함께 피 흘리는 고통을 나누고 계셨습니다. 하느님 아버지는 당신 외아들이 세상을 위해 대신 죽어서 그 사랑으로 죄 많은 세상의 죗값을 치르도록 허락하셨습니다. 이것이 하느님이 세상을 사랑하시는 방법입니다.

2차 세계대전을 통해서 무려 6백만 명의 유대인들이 나치에 의해 학살당했습니다. 그러면 그 전에 유태인들이 특별히 다른 나라 사람들보다 죄를 많이 지어서 재앙을 맞이하였을까요? 그럴 리가 없습니다. 아닙니다. 유태인들은 나라가 망하고 이천 년 넘게 세계 곳곳으로 흩어져 유랑민으로 살았습니다. 각 지역에서 소수자로 약자로 살았고, 소외당하고 차별당하면서 힘들게 살았으면 살았지 다른 민족들보다 더 나쁘게 살고 벌 받을만한 악행만을 저지른 사람들은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왜 그런 끔찍한 형극, 노인들과 여성들과 병자들과 어린아이들까지 모조리 독가스실로 보내져서 번제물로 불살라지는 인류 역사상 최악의 재앙을 그들이 경험하게 되었을까요? 유태인들이 다른 민족에 비해서 악을 많이 저질러서라기보다 나치 독일을 비롯해서 유럽의 많은 백성들이 저지른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죄악을 유대인들이 대신 기워 갚으면서 스스로를 번제물로 바치고 있었던 것입니다.

하느님 대신 돈을 숭배하는 세상

오늘날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는 한분이신 하느님을 외면하고 하느님 대신 돈을 숭배하고 있습니다. 경제를 최고의 가치로 여기고 있습니다. 높은 사람에서부터 낮은 사람에 이르기까지. 인류가 하느님을 섬기지 않고 맘몬을 섬기기 시작했습니다. 많이 가진 사람은 더 많이 누리기 위해서 적게 가진 사람들의 것을 빼돌리고, 인간과 인간 사이의 신의와 존중, 배려와 연민을 쓰레기통에 던져버리고 삽니다. 연봉 수십억 원 받은 월가의 금융 전문가들이 더 많이 벌려고 금융상품을 조작하고 왜곡해서 결과적으로 세계 곳곳의 많은 사람들을 하루아침에 거리로 내몰았습니다. 국내에서도 대기업은 사상 최대의 이익을 누리고 있다는데 중소기업은 점점 갈수록 빈껍데기가 되어 가고 있습니다.

대형마트는 전국 구석구석을 장악하고 동네의 영세한 구멍가게들은 거의 사라지고 없습니다. 경쟁을 통해 정규직은 자꾸 줄어들고 비정규직은 늘어나서, 정규직 가진 사람들은 퇴직금에 자기 자녀 학자금까지 혜택을 받는가하면, 비정규직은 하루 종일 뛰어도 당장 오늘 하루 가족을 부양하기가 어려운 그런 상황으로 내몰리고 있습니다. 서민들의 자산을 맡아서 안정되게 운영하고 지켜주어야 할 금융회사의 임직원들이 사욕을 채우려고 투기와 횡령에 앞장을 서서 서민들이 평생을 피땀 흘려 모은 돈을 말아먹고 있습니다. 이러한 비리와 부정을 감시하고 올바로 관리하라고 만들어 놓은 공적 기관의 공직자들은 이들과 한통속이 되어 눈감아 나눠먹고 있습니다. 모두 하느님을 섬기지 않고 맘몬을 섬기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느님께서 이러한 오늘의 세상을 보시며 어떤 마음이 드실까. ‘노아의 홍수’ 전의 하느님 말씀이 떠오릅니다. “세상은 하느님 앞에 타락해 있었다. 세상은 폭력으로 가득 차 있었다. 하느님께서 내려다보시니 세상은 타락해 있었다. 정녕 모든 살덩어리가 세상에 타락한 길을 걷고 있었다.”

우리의 불의와 탐욕을 떨쳐 버리고 하느님의 정의로 돌아서야

이런 현실에도 불구하고 오늘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참아주고 계시고 세상이 회개하기를 기다려 주십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가난하고 굶주리고 병들고 희망 없이 나날을 보내고 있는 북한 동포들 안에서 예수님은 함께 고통 받으면서 우리들의 회개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이 한반도의 분단과 무력대결, 굶주림과 병고를 끝내고 참된 평화를 이루기 위해서는 전투기나 대포와 함정이나 미사일이 아니라 세상을 타락시키는 맘몬을 떠나서 하느님께 돌아서는 참회와 회개가 먼저 이루어져야 합니다. 맘몬을 주인으로 섬기는 우리의 불의와 탐욕을 떨쳐 버리고 하느님의 정의로 돌아서는 이 회개가 먼저 이뤄져야 합니다. 그러면 하느님께서 평화를 선물해 주실 것입니다. 오늘 예레미야서의 한 구절이 떠오릅니다.

주님께서 예레미야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이런 말을 백성들에게 일러 주어라. 내 눈에서는 밤낮으로 눈물이 흘러 울음을 그칠 수가 없구나. 처녀 같은 내 딸 이 백성이 심하게 얻어맞아 치명상을 입었다. 들에 나가보면 칼에 맞아 죽은 사람들뿐이요, 성안에 들어오면 굶어서 병든 사람들뿐 예언자들이나 사제들은 알지도 못하는 나라에 끌려가는구나.” 그러자 예레미야가 주님께 이렇게 아룁니다. “유다 백성을 아주 잊으셨습니까. 아주 저버리셨습니까. 시온은 싫증이 나셨습니까. 어찌하여 우리를 죽도록 치셨습니까. 평화가 오리라고 기다렸더니 좋은 일은 하나도 없군요. 행여 병이 나을 때가 있을까 하고 기다렸더니 무서운 일만 당하게 되었군요. 주님, 우리는 스스로 어떤 못할 일을 하였는지 잘 알고 있습니다. 우리 조상들이 어떤 몹쓸 짓을 하였는지도 잘 압니다. 우리는 주님께 죄를 지었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명성을 생각하셔서라도 우리를 천대하지는 마십시오. 주님의 영광스러운 옥좌를 멸시하시지 마십시오. 우리와 맺은 계약을 마음에 두시고 깨뜨리지 말아 주십시오.”

우리 모두 예레미야와 함께 같은 마음으로 참회의 기도를 바치며 우리 자신과 이 나라를 평화의 모후이신 성모님께 봉헌하십시다. 그러면 성모님께서 기쁘게 우리의 이 기도를 전달해 주실 것입니다.

강우일 주교/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 의장, 제주교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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