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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님께서 남기신 글 (2012-04-18 00:53:28, Hit : 1082)
<왜 길바닥에서 미사하십니까?> 강우일 주교님 강론

2012년 성유축성미사 강우일 주교 강론(전문)  

2012년 04월 10일 (화) 16:20:26 강우일 주교  .  


찬미예수님,

부활축제를 준비하기 위해서 여러날 판공기간 동안 고백성사를 주시면서 우리 형제자매님들을 잘 영적으로 준비시켜주신 신부님들, 모두에게 진심으로 노고를 치하하고 감사드립니다. 수고 많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세상을 구원하기 위해서 전 존재를 아낌없이 내어주신 당신의 십자가 제사를 우리가 잊지않고 기억하도록 성체성사를 제정해주셨습니다. 전세계 교회는 오늘 이 거룩한 사건에 대한 기억을 다시 불러일으키면서 주님께 감사하기 위해 주교를 중심으로 모든 교구에서 한자리에 모였다.

또한 오늘은 이 성체성사를 세계 구석구석에서 시대를 뛰어넘어 계속 거행하도록 자신들의 평생을 봉사자로 봉헌한 사람들을 신품성사로 축성해주신 주님의 은총에 감사하고, 찬양하는 날이기도 합니다.

사제가 없으면, 성체성사가 끊어집니다. 이 거룩하고 은혜로운 날을 맞아 "사제란 무엇하는 사람들인가"를 우리 신부님들 자신을 비롯해 교우 여러분들도 다시 한 번 성찰하고 가슴에 그 의미를 새기면 좋겠습니다.

사제란 누구인가, 무엇하는 사람인가?
예수는 제관 아닌 예언자..

사실 예수님은 제자들을 부르실 때 한 번도 '사제'라는 용어를 쓴 적이 없습니다. 사도들도, 신약성서 어디에도 자신들을 베드로,  야고보 하고 이름으로 부르거나 형제로 불렀지, 사제나 신부라는 말은 나오지 않습니다. 예수님 주변 사람중에 아무도 예수님께 사제란 칭호를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언젠가 예수님이 나자렛 고향 회당에서 가르쳤을 때 모두가 예수님의 권위있는 말씀에 감탄하면서도 진정으로 마음을 주지는 않았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예언자는 어디에서나 존경받지만 고향과 집안에서만은 존경받지 못한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고 하더냐?”라고 물었을 때, 제자들은 “세례자 요한이라고 합니다. 어떤 이들은 엘리야라고 예레미야나 예언자 가운데 한 분이라고 합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또 언젠가는 백인대장의 종을 고치고, 과부의 외아들을 살리자 사람들은 “우리 가운데 큰 예언자가 나타났다”고 말했습니다. 또 언젠가는 바리사이들이 “헤로데가 당신을 죽이려고 하니, 피신하시오”라고 말하자, 예수께서는 “가서 그 여우에게 이렇게 전해라. 보라, 오늘과 내일은 내가 마귀들을 쫒아내며 병을 고쳐주고 사흘째 되는 날은 내 일을 마친다. 그러나 오늘도 내일도 그 다음날도 내 길을 계속 가야 한다, 예언자는 예루살렘이 아닌 다른 곳에서 죽을 수 없기 때문이다”라고 대답하셨습니다 .

이런 어록을 살펴보면, 예수님 자신도, 그 주변사람들도 예수님을 예언자의 반열에 속한 사람으로 이해했지 성전에서 일하는 제관으로 인식한 사람은 없었습니다. 언젠가 예수님께서 성전을 방문했을 때, 제물을 사고팔고 환전하는 상인들을 내쫒으며 소동을 피운 적이 있습니다. 성전에서 이뤄지는 경신례와 제사에 예수님은 별로 관심을 보이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면서 예수님게서는 내가 바라는 것은 희생제물이 아니라 '자비'라고 하신 말씀이 무슨 뜻인지 배우라고 가르치셨습니다.

성전에 내는 십일조의 범위에 대해 까다롭게 따지는 이들에 대해 “불행하여라 너희 위선자,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아, 너희가 박하와 시라와 소훼향으로 십일조를 내면서 의로움과 자비와 신의처럼 율법에서 더 중요한 것들은 무시하기 때문이다”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이 성전을 허물어라. 그러면 내가 사흘안에 다시 세우겠다”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경신례와 제사 행위에 거부감을 갖고 계셨습니다. 신약성서에서 예수님께 사제라는 칭호가 적용된 것은 오직 히브리서뿐이었습니다. 끊임없이 동물을 잡아바치는 제사를 지낸 옛 계약의 사제들과 달리, 예수님은 오직 십자가에서 단 한번 당신 몸을 제물로 바친 대사제이시고, 레위지파가 아닌 하느님께서 직접 임명하신 멜키세덱과 같은 등급의 대사제라고 히브리서 저자는 말합니다.

히브리서 10장에는 그리스도께서 직접 말씀하신 “당신께서는 제물과 예물을 원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저에게 몸을 마련해 주셨습니다. 번제물과 속제물을 당신께서는 기꺼워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리하여 제가 아뢰었습니다. 보십시오 하느님, 두루마리에 저에 관하여 기록된대로 저는 당신의 뜻을 이루려 왔습니다”라고 기도하신 내용이 나옵니다.

아파하는 이들과 함께 하는 길바닥 미사야말로
십자가상 예수님의 단 한번 제사와 가장 닮아..

얼마전에 편지를 한 통 받았습니다. "왜 주교님은 강정 길바닥에서 자꾸 미사를 드리십니까. 고귀한 미사를 아무데서나 품위 없이 지내게 하십니까?" 라는 내용이었습니다. 그 전에도 그런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미사를 결코 시위의 수단으로 삼아서는 안된다는 말을 여러번 들었습니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미사는 교회의 전례이니, 아무데서나 아무렇게나 지내서는 안 된다고 저도 주교로서 계속 가르쳤습니다.

그런데 지난 5년 동안 강정문제를 다루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오늘 이렇게 모든 것이 갖춰진 성당에서 장엄하게 드리는 미사는 하느님이 즐겨 받으시고 공소도, 신자도 별로 없는 강정에서 주민들, 평화활동가들과 함께 하고 평화와 생명과 정의를 위해서 외롭게 싸우면서 힘들게 버티는 이들과 길바닥에서 드리는 미사는 하느님이 마다 하실까? 오늘 예수님이 오시면, 어느 쪽 미사를 더 즐겨 받으실까? 우리가 믿고 사랑하고 희망해온 예수님은 분명 길바닥에 모인 이들을 결코 외면하지 않고 먼저 찾아가실 것이라는 소리가 제 영혼 속에서 들려왔습니다. 아파하는 이들과 함께 아파하고 슬퍼하는 이들과 함께 하는 미사야말로 십자가에서 봉헌되신 예수님의 단 한번 제사와 가장 닮은 것이 아니겠는가?

하루도 빠짐없이 미사를 지내는 우리 신부님, 수도자, 교우 여러분.
미사가 무엇인지. 다시한 번 그 의미를 깊이 새겨야 하지 않을까요? 오늘 말씀을 묵상하면서 이사야 예언서에서 하느님께서 끊임없이 제관들에게 들려주신 말씀이 거듭 생각났습니다. 이사야서 1장의 말씀을 들려드리겠습니다.

"무엇하러 나에게 이 많은 제물을 바치느냐? 나는 이제 숫양의 번죄물과 살찐 짐승의 굳기름에는 물렸다. 황소와 어린양과 숫염소의 피도 나는 싫다. 더 이상 헛된 제물을 가져오지 마라. 분향 연기도 나에게는 역겹다. 나의 영은 너희의 초하루날 행사들과 축제들을 싫어한다. 너희가 팔을 벌려 기도할지라도 너희 앞에서 내 눈을 가려버리리라. 너희가 기도를 아무리 많이 한다 할지라도 나는 들어주지 않으리라. 너희 자신을 씻어 깨끗이 하여라. 나의 눈앞에서 너희의 악한 행실들을 치워버려라. 악행을 멈추고 선행을 배워라. 공정을 추구하고 억압받는 이를 보살펴라. 고아의 권리를 찾아주고 과부를 두둔해주어라."

이 말씀이 오늘 루카 복음에서 나자렛 회당에서 읽은 말씀과 똑같습니다. 그리고 그 이사야서를 읽고 나서 예수께서 "오늘 이 자리에서 이 말씀이 그대로 이뤄졌다"고 당신의 삶과 행적이 무엇 때문인지, 설명해주셨습니다.

강우일 주교 (제주교구장,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 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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