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31 7/203 회원가입회원로그인
  View Articles
 님께서 남기신 글 (2018-02-09 08:36:46, Hit : 368)
<순례자> 연중 제5주간 금요일

<연중 제5주간 금요일>

<순례자>

병원에서 시행하는 내외과적 치료의 기본은 막힌 것은 뚫고, 갈라진 것은 봉합하는 일입니다. 주로 사람이 사망에 이르는 것은, 어딘가가 막혀있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숨을 못 쉬고, 소화를 시키지 못하며, 심박수가 현저히 떨어지는 것입니다. 어디가 막혀있는지를 빨리 찾아내어, 삽입이 되었든 투약이 되었든 그곳을 뚫어내지 못하면 사망에 이르게 됩니다.

적어도 몸에 대한 의학적 대처는 상당히 진보해왔고 지금도 그 똑똑하다는 사람들이 다 달라붙어 연구를 거듭하고 있으니, 모르긴 해도 인간의 평균수명은 갈수록 늘어나게 될 것임이 대체적인 전망입니다.

예전 본당에서 회장님을 하셨던 분을 뵈었습니다. 47년 생이시니 칠순이 넘으셨지요. 이 연세의 분이 자가용 다 놔두고 대중교통과 도보로만 부산교구 124개의 모든 본당을 순례하신 다음, 그 순례 단상을 정리해 한 권의 책으로 출판하신 것이지요. 대단하시다는 말씀 밖에는 드릴 수가 없었습니다.

신부되기를 잘했지. 내가 평신도로 살았다면 자식과 마누라 건사하며 저만큼 하고 살 수 있었을까? 감히 깜냥도 되지 않아 그저 말씀을 경청하는데 그분께서 그러십니다. 예전에 70은 노인이었는데, 일흔을 넘기고도 지금은 앞으로 20년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고민해야 되는 시대라는 거지요. 정말로 그렇습니다.

70이 죽기 위해 기다릴 수 있는 나이도 아니고 그런 시대도 아니라는 겁니다. 자꾸만 관성적으로 70이면 자기 살아온 것만 되새기고, 그러다보면 맨날 자기만 옳다는 고집줄만 늘어나게 되는데 당신은 그러고 싶지가 않다는 겁니다. 과거에 비하면 인간이 늙어가는 이 과정이 아주 길어졌기 때문에, 늙는 것도 질병의 하나로 간주 할 수 있다면 그 병을 극복하기 위하여 끊임없이 무엇인가를 새롭게 배운다 하셨습니다.

그래서 신학원에 입학해서 신학을 배우고, 평신도 사도직 신앙학교에 들어가서 신앙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다시 익히고, 임상사목연수인 CPE를 하면서는 중증질환자가 되었을 때 어떻게 마음먹어야 하는지를 배우고, 성경필사를 하면 할수록 더 깊이 알게 되는 하느님 말씀의 매료되어 신구약 필사를 무려 다섯 번이나 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부산교구 본당 순례는 그 새로움의 또 다른 진화이었던 것이지요.

정말로 이런 분은 죽어도 죽지 않겠구나! 싶었습니다. 세월이 흐르면 물리적으로 몸은 어딘가 막히게 되어있지요. 하지만 그 정신과 영이 막힘이 없습니다. 새로움을 언제든지 수용할 수 있고 무엇보다도 새로움을 적극적으로 실행하고 있습니다. 자신에게 막힘이 없으니 타인에게는 말할 것도 없고 무엇보다도 하느님과의 관계가 뚫려 있습니다!

일곱 살짜리의 미래가 기대되는 것이 아니라 이 칠순 어른의 늙어감이 더 기대가 되는 순간이었습니다. 막힌 것. 지금 나를 막고 있는 것은 어쩌면 나 자신이고, 내 경력이고, 내 자랑일겁니다. 그것들이 오히려 나를 막고 나를 가로채고 있습니다. 그러니 살아있으면서도 딱딱하게 굳어가고 있는 것이지요.

“열려라. 에파타!”하십니다. 무엇을 열어야 하는지가 보입니다. 회장님이 선물하신 책의 저자란에 스스로를 이렇게 소개하셨더군요.

“순례자. 이호창 다니엘”
열려있는 사람의 이름은 그래서 ‘순례자’인가봅니다.
모든 사람이 저마다의 인생에 ‘순례자’이듯이. 아멘.







Prev  <하찮은 인생> 사순 제1주간 월요일
Next  <전부를, 오늘> 성 바오로 미키와 동료 순교자 기념일
Copyright 1999-2021 Zeroboard / skin by uZin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