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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님께서 남기신 글 (2017-12-19 08:40:38, Hit : 325)
<불임과 동정> 대림 제3주간 화요일

<대림 제3주간 화요일>

<불임과 동정>

우리가 이렇게 신앙인으로 살아가고자 하는 궁극의 목적이 무엇일까요?
왜 우리는 신앙생활을 하는 것이지요?
힘들 때 하느님을 찾고, 아쉬울 때 그분을 청하고, 마음의 위로와 평화를 위하여,
얼마든지 신앙할 수 있습니다.

영원할 것이 없는 가변적 세상에서 초월과 신비의 대상을 상정하는 것은
고대이래로 인간이 걸어온 요원한 답습이자 일종의 관성에 해당되기에
어쩌면 우리는 믿으면서도 왜 믿는지에 대하여 질문을 생략할 때가 많습니다.

오늘 복음이 그 질문이자 대답에 해당된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제가 어떻게 그것을 알 수 있겠습니까? 저는 늙은이이고 제 아내도 나이가 많습니다.”(루카 1,18)

생명에 대하여 ‘내가 그것을 어떻게 할 수 있겠느냐?’는 부정적 반응이 비슷하게 등장하는 대목이 있지요? 어디일까요? 예수의 어머니도 똑같이 말하였습니다.

“이 몸은 처녀입니다.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루카 1,34)

불임과 동정. 이 둘은 사실상 같은 말이요, 인간의 힘으로는 도저히 어떻게 할 수 없는 상황에서 벌어진 공교로운 두 탄생. 이 두 생명 모두 인간 주도의 사건이 아니라 하느님 주도의 사건임을 밝힘으로서 구원 역사의 서막은 시작됩니다.

내가 아니었습니다. 하느님께서 그렇게 하셨습니다!
불임으로부터의 출생인 요한과 동정으로부터의 탄생인 예수의 대칭은 바로
믿음이란 인간이 주도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주도하시는 것임을 드러낼 뿐만 아니라,
신앙이 고백할 수 있는 최종의 목적지임을 밝힙니다.

내 인생도 그렇습니다.
하느님께서 내 인생을 주도하셨습니다.
그분께서 저를 이끌어주셨습니다.
저는 다만 그분을 따랐을 뿐입니다.

하느님께서 제 인생의 주인이십니다.
이것을 고백하는 것.
믿는다는 것은 결국 이 고백, 곧 성경의 결론에서 마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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