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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님께서 남기신 글 (2017-06-08 10:20:00, Hit : 338)
<메리놀 한걸음> 2017. 05 직원 월례미사

<2017. 05 직원월례 미사>

<메리놀 한걸음>

제가 독일에 있었을 때의 일입니다. 제가 일하는 곳에서 200킬로 정도 떨어진 ‘데트몰트’라는 곳에 한 달에 한 번씩 미사를 갔습니다. 그곳에는 몇 명되지 않는 유학생들과 독일 남편과 함께 사는 한국 자매들이 네댓명 있었지요. 한국 사람들 숫자가 워낙 적어서 한 달에 한 번 미사를 마치고 나면 김치나 전 같은 것을 각자가 하나씩 해와서 함께 밥을 먹곤 했지요.  

배식을 해야 하는데 자매님들 중에 가장 연배가 높은, 칠순이 다 되어가시는 자매님에게 제가 무의식중에, “어머니 먼저 뜨세요!” 그랬습니다. 그리고는 저도 밥을 퍼서 자리에 앉았지요. 그런데 그 자매님이 숟갈을 드시지 않고 가만히 계시는 겁니다. 어디 불편하신가, 여쭈어보니 자매님 대답이 그랬습니다.

살면서 처음으로 ‘어머니’ 소리를 들어봤다는 겁니다. 당신도 아이들이 있지만 다 독일 아이들이라는 거지요. 한국말로 어머니... 소리를... 그것도 신부님에게 듣고 나니 진짜로 목이 매여 밥이 안 넘어간다... 하며 눈물을 흘리시는 것이었습니다. 당황했습니다. 한국에서야 그렇지 않습니까?

단골 포장마차만 가도 어지간하면 어머니고 좀 만만하다 싶으면 이모님입니다. 그러면 얼추 다 통합니다. 조선 남자들끼리 모이면 그중에 진짜 사장님은 몇 명이나 되는지는 몰라도 사장님들이 수두룩합니다. 병원에서도 그렇지요. 어떻게 하다 보니 저나나나 다 선생님입니다. 호칭에 인플레가 있다손치더라도 나쁘다하기도 어렵습니다.  

때로는 오히려 정확한 호칭이 불쾌감을 줄 때가 있는 모양입니다. 연로하신 환자분이 씩씩거리며 말씀하십니다. 자꾸만 자기에게 누구 환자분 누구 환자분 하지 말라는 거지요. 가뜩이나 아픈데 자꾸만 환자분 환자분 하면 더 아프다는 겁니다. 진짜 그런가?

그리고 병원에서도 대기 번호표 순서를 부르며 ‘몇 번 고객님, 몇 번 고객님’ 아예 마이크를 대고 떠드는데, 이건 좀 아니지 않나? 병원이 무슨 은행이나 백화점도 아니고 몇 번 고객, 몇 번째 손님만은 아니지 않나? 이름 뒤에 님을 붙이면 제일 좋은 것 같은데, 이름을 모를 때는 어떻게 하지?

혼자서 궁시럭거리는 고민들이 많습니다. 이것은 좀 이렇게 하는 것이 어떨까? 저건 좀 저렇게 하는 것이 어떨까? 시설을 바꾸고 건물을 넓히고 하는 거창한 것 말고라도, 복도에 떨어진 쓰레기 하나라도 좀 주우며 다니면 어떨까? 어디에 뭐가 떨어지고 어디에는 비가 새고, 하다 못해 문고리 하나라도 여기 말고 저기 있으면 어떨까? 어디 말 못하고, 괜히 이런 걸로 말하면 인간이 좀 잘잘해보이는 그런 것들조차도 함께 고민하면 나 혼자 하는 것보다는 더 좋은 아이디어가 나오지 않을까? 해서 만든 것이 있습니다.

오늘 아침에 우리 병원 밴드에 <메리놀 한걸음>이라는 방을 하나 따로 만들었습니다. 거창하게, 메리놀 10년 20년의 앞을 내다볼 정도의 거창한 병원 발전 제안은 안하셔도 됩니다.  그렇게 거창한 것들은 병원 경영진에서 머리에 쥐가 나도록 할 것이고, 그거 하라고 월급 주고 있으니 그들에게 맡기면 됩니다.

우리는 그런 거 말고, 병원 문화와 소비에 관련된 것들. 지금 우리들의 직장생활을 아주 작게라도 바꾸어낼 수 있는 <한 걸음>에 대하여 제안하고 고민하는 우리들만의 창을 갖자는 것입니다.

작은 것이 강하도록 하겠습니다. 어짜피 큰 것은 나 혼자 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작은 것들은 할 수 있습니다. 혼자는 못하지만 두 명은 할 수 있고, 두 명은 못하지만 네 명은 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작은 것, 작은 팀, 작은 소통들이 실질적인 힘을 더 가질 수 있도록 새 판을 짜보자는 것입니다.

그래서 큰 것 때문에 메리놀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작은 것, 작은 이유들이 쌓이고 쌓여 결국 내가 아주 오랫동안 사랑할 수 있는 병원 문화를 만들어가 보자는 것이지요. 제가 이 생각을 한 이유가 있는데 짧게만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사실은 스무날전 전 5월 11일. 메리놀병원 방사선종양학과의 이곤팀장님이 선종하셨습니다. 중간에 잠깐 다른 병원으로 이직하긴 하였지만, 87년도 입사하셔서 무려 40년 가까이 메리놀의 현직에 계셨던 직원 한 분의 장례를 병원에서 치르는 모습을 보면서, 그랬습니다.

그래. 어쩌면 이 병원이, 지금 내가 죽으면, 내 장례를 치러야할 병원이로구나. 미우나 고우나, 이 병원을 떠나간다 할지라도, 제가 다른 병원에서 죽지 않고 결국 이 병원에서 내 삶의 마지막을 보낼 수도 있겠구나 생각을 하니, 그랬습니다. 큰 것이 아니라 작은 것 하나라도 내가 있을 때 좀 바꾸어갔으면... 말이나 기대만이 아니라, 진짜로 우리들 스스로가 할 수 있는 변화를, 지금 살아 있을 때, 아니 내가 이 직장에 있을 때, 지금 나눌 수 있기를.

그래서 2017년도 한 해, 작은 팀을 강하게 <원팀 메리놀>을! 그리고 작은 것 하나라도 바꾸어나갈 수 있다면 우선적으로 그것을 실행해보자는 뜻에서 <메리놀 한걸음>을!

병원은 병원대로. 나는 나대로 살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간절하여, 십수년동안 메리놀에 봉직하다 메리놀 재봉실의 마지막 직원으로 남아계시면서 여러분 가운을 만드셨던 손순옥 여사님이 오늘 자, 5월 31일자로 정년하시며,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하고 제 방에 와서 인사하시던 그 심정을 전하며 여러분들께 말씀을 드립니다. 있는 동안 사랑하고, 사랑한만큼 더 많이 성장합시다. 메리놀을 사랑했던 사람. 크지 않아도 좋습니다. 할 수 있는 작은 것부터 더 많이 사랑하도록 합시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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