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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님께서 남기신 글 (2020-03-01 22:53:49, Hit : 137)
<왜 수도자인가?> 사순 제1주간 월요일 스승예수 수녀회

<사순 제1주간 월요일>

(INTRO)
<인간은 무엇으로 사는가?> 레오 톨스토이의 단편 제목이기도 한 짧은 질문의 결론은 사랑이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지금 우리는 무엇으로 살아야 하는가? 이것이 오늘 독서와 복음의 맥락이라 하겠습니다. 인간으로 나서 인간이 되고 끝내 인간으로서 죽을 수 있는 자격을 갖추기까지, 아마도 오늘의 독서와 복음은 마지막 침상까지도 우리를 따라올 것입니다. 적어도 예수를 주님으로 부르며 살아온 목숨들이라고 한다면 더더욱 그렇습니다. 인간은 사랑으로 삽니다. 잠시 침묵하며 사순 제1주간의 미사를 준비하겠습니다.

(강론)

<왜 수도자인가?>

인간에 대한 수많은 기준 또는 관점이 존재하지만, 대충은 그렇습니다. 좋은 사람 혹은 나쁜 사람, 성공한 사람 혹은 실패한 사람 등등으로 구분할 때 사용하는 기준이 있지요. 계량화 수치화되기는 쉽지 않더라도 대부분 주관적인 기준을 가지고, 그는 어떤 사람인가를 봅니다.

구약의 시대에는 기준이라는 것이 그랬습니다. 최소한 인간이라면 이런 것들은 하지 말아야 한다...가 우선이었지요. 법의 제한을 통하여 인간을 구축하려했습니다. 무엇을 하지 말아야 한다. 그래야 죽지 않을 것이고, 좋은 사람, 성공한 인생이라는 의식의 틀을 제공한 것입니다.  다양한 가능성을 지닌 인간에 대한 수많은 금지와 한정, 그리고 터부가 구약이 이끌어가는 시대의 컨텍스트라고 하겠습니다.

반면 신약에 이르면 인간을 바라보는 관점의 변화가 생성되는데 그 지점은 바로 ‘인간이 과연 법으로 구원을 받을 수 있는가!’라는 성찰과 의식이 진화되어가는 과정에서 발생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 무엇을 하지 말라 가르쳤던 구약의 법을 두고 그는 이렇게 말하지요. “너희는 그렇게 들었다. 그러나 나는 이렇게 말한다.” 신약의 출발점입니다.

오늘 복음도 이런 이해의 연장에서 읽는 것이 도움될 듯 싶습니다. 법을 통한 인간의 구원이 아니라, ‘그가 평생 무엇을 지켰고, 무엇을 따랐으며, 무엇을 목숨처럼 간직했는가!’ 가 아니라, “가장 보잘 것 없는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그는, <아니, 너는> 무엇을 해주었는가!” 법이 명기할 수 없는 한정을 뛰어넘는 그곳에 당신의 이름을 붙이십니다. “그들에게 해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준 것이다.”

니가 무엇을 배웠고, 무엇을 지켰고, 무엇을 쌓았는지, 나는 묻지 않을 것이다. 니가 무슨 옷을 입었고, 무엇을 먹었으며, 무엇을 가졌는지도 나는 묻지 않을 것이다. 심지어 니가 시간경에 충실하고, 성덕과 영신 수련을 위하여 얼마만큼의 정진을 하였는지도 나는 묻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너에게 물을 것이 하나가 있다 “너의 가장 보잘 것 없는 형제 가운데 단 한 사람에게 너는 과연 무엇을 해주었는지, 그들을 너는 어떻게 대했는지, 그것은 물을 것이다.”

그래서 저는 지금도 이렇게 생각합니다. “내 마음에 들지 않고, 내 성에 차지 않으며, 내 뜻대로 되지 않는 그 사람. 바로 그를 나는 어떻게 대하고 있는가?” 이것에 대한 내 얼굴과 내 마음과 나의 행동이, 지금 내가 가진 영성의 깊이라고 생각합니다. 다시 우문현답을 드립니다.

왜 기도하는가? 왜 봉헌하는가? 왜 수도자인가?
언제든지, 누구든. 아주 쉽게. 사랑할 수 있기 위하여!
언제나 복음의 답은 간단하였던 것 같습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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