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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님께서 남기신 글 (2016-11-18 08:47:15, Hit : 358)
<광장> 연중 제33주간 금요일

<연중 제33주간 금요일>

<광장>

제정일치 사회에서 성전은 그 자체로 하나의 권력이었습니다.
성과 속을 구분 짓는 공간적 분리가 명확했고, 신분은 철저했으며,
사유화된 권력이 유지시키는 배척의 힘이 일상을 지배하는 곳이었습니다.

정치가 종교에 예속되어 비이성적 광기에 휘둘리거나 혹은 종교가 정치의 근간이 되면서 벌어진 숱한 폐단을 경험한 이후 인류는 국가 권력이 종교를 사유화하지 못하도록 ‘정교분리’라는 원칙을 대부분의 국가에서 채택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남은 것은 분리된 정치권력과 종교권력이 서로간의 견제와 비판을 통하여 저마다, ‘스스로의 자정 능력을 어떻게 유지할 것인가?’입니다. 무엇이든 ‘절대적’이 되면 ‘적대적’이 되고 그러면 반드시 부패하게 되어 있습니다. 절대권력 치고 부패하지 않은 권력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끝까지 옳고 끝까지 선한 권력이 인간 역사에는 단 한 번도 없었으니까요.

정치와 종교가 분리되고 난 다음, 양분된 이 두 권력이 스스로의 정화와 자정능력을 얼마나 상실하지 않고 유지되고 있는가! 이것을 보면 지금 작금에 벌어지고 있는 참상의 원인에 얼추 근접했다 하겠습니다.

지지율 5%에 불과한, 검찰의 조사 대상자인 대통령이 흉포하고 아둔하게 휘두른 권력을 스스로 정화할 능력이 있다고 보십니까? 교회의 고위지도자들이 어떤 식으로든 잘못 내린 결정을 스스로 철회하거나 처절한 자기 고백을 하는 경우를 본 적이 있으십니까?

이게 문제라는 거지요. 권력자가 되면, 광장에 나오지를 않는다는 겁니다!

최소한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민주주의라는 사회는 말 그대로 위탁해놓은 소수 권력자의 잘못이나 폐해를 다수의 주권자들에 의해 시정 및 개정될 수 있도록 그 공간을 만들어놓은, 말 그대로의 ‘광장’, ‘데모크라시’인데, 민주주의 국가에서 위탁받은 권력을 행사하는 소수자들이 광장에 나와 있는 백만의 주권자들을 향해 그저 바람 불면 꺼지는 ‘촛불 좌파’ 정도로 인식하고 있으니, 민주주의의 가장 큰 비극과 어리석음을 이 21세기에 동시에 맛보고 있는 셈이지요.  

종교도 정치도 부패하지 않으려면, 광장에 나서야 합니다. 독방에 앉아, 담합하고 계산하고 장사치처럼 셈법을 따지다가 결국 모든 것의 주인이신 분께 채찍에 휘둘리기 전에, 나만 옳고 나만 당당하고 나는 하늘 향해 구릴 것이 없다며 그렇게 숨어들어갈 일이 아니라는 겁니다. 100만으로 안된다면 200만, 300만. 이번 주 토요일은 저도 그들 중에 하나가 되어야 겠습니다. 하긴 이래서 민주주의 사회에서 시민으로 산다는 일은 아둔하거나 피곤하거나 둘 중에 하나인 모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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