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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님께서 남기신 글 (2018-09-18 06:27:29, Hit : 398)
<살아도 사는 것처럼> 연중 제24주간 화요일 부산평화방송 강론

<연중 제24주간 화요일>

<살아도 사는 것처럼>

부산 평화방송 애청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부산 메리놀병원에서 근무하고 있는 조영만 세례자요한 신부입니다.

사람에게 저마다, 죽어야 할 때...라는 것이 딱히 정해진 건 아닐테지만,
그래도 어리고 젊은 날의 죽음은 결코 예사로울 수 없는 노릇이지요.  
얼마나 인간의 생명이라는 것이 위태로운 것인지 목도하는 사건 앞에서면 더욱 그렇습니다.

제겐 아직도 지워지지 않는 죽음 하나가 있습니다. 혜진이라는 열여섯 소녀였습니다. 초등학교 때 부모가 이혼을 하고 그 이후 방황하던 소녀는 급기야 가출을 하게 됩니다. 하지만 열여섯 소녀가 맨몸으로 만나는 세상이 호락할 리가 없지요.

오만 일을 다 겪고 결국 서울에 있는 가출 소녀의 쉼터에서 어쩌면 처음으로 자기를 따뜻하게 품어주는 수녀님과 봉사자들을 만나게 된 겁니다. 불만과 적개심으로 가득 찼던 아이가 그곳에서 육개월을 살더니 어느 날, 죽어도 안가겠다던 집으로 돌아가 이제는 자기도 공부하고 집에 남겨진 동생도 돌보겠다고 하더랍니다. 그래서 다시 부산으로 왔지요.

집은 그 예전 그대로였지만, 아이가 달라져 있었습니다. 집 근처에 있는 대안학교로 찾아가서 입학 신청서를 제출하고, 내팽겨쳐있던 동생을 돌보며 아이는 그렇게 딱 보름을 살았습니다. 그리고 동생네 학교의 바자회에 먹거리 사러간다고 아버지에게 5천원을 받아들고 집을 나섰다가 반여동 비탈길에서 운전 미숙자의 부주의로 인한 교통사고로 현장에서 목숨을 잃었고, 그 장례미사를 제가 집전하게 되었습니다.

혜진이 아버지의 눈물 어린 고백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다시 돌아온 혜진이는 예전의 그 아이가 아니었습니다. 내 자식이지만 전혀 다른 아이었습니다. 아마 그 모습을 보여주려고 잠깐 돌아왔다 다시 떠난 것 같습니다.”

죽었던 아이가 살아 돌아오고, 살아 돌아온 아이가 다시 죽어 떠나갑니다. 평생을 가슴에 품고 살아야 할 숱한 이야기 가운데 유독스러운 것은 ‘진짜 사는 게 뭐고, 진짜 죽는 게 뭘까?’라는 고민을 이 열여섯짜리 소녀에게서 만났기 때문입니다.

살아도 사는 것처럼 살아본 적이 없는 사람은 죽어도 죽는 것처럼 죽지를 못합니다. 단 하루를 살아도 뜨거운 목청 가득 살아있음을 확인하며 사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요? 사랑하는 사람과, 내가 사랑해야 하는 사람 속에 충분히 사랑했음을 고백하며 오늘 죽어도 좋은, 내일 떠나가도 좋은 삶을 사는 사람이 정말 몇이나 될까?

그러면서 우리들은 끌려갑니다. 맨날 “죽겠다. 죽겠다!” 곡소리를 끊어내지 못하는 것은 결국은 내 죽을 길. 내가 만나야 할 나의 장례 예식에 하루하루 끌려가며 살기 때문이겠지요.

이제 죽겠다 죽겠다 소리는 하지 않으렵니다. 죽음 그 자체가 비극이 아니라, 살아도 사는 것처럼 살지를 못하고 죽어도 죽는 것처럼 죽지를 못한 채 억울해하거나 불안해하는 이 어리석음이 비극일테니까요.

“죽은 이가 일어나 앉아 말을 하기 시작하였다. 예수님께서는 그를 그 어머니에게 돌려주셨다.”(루카 7,15) 부산평화방송 애청자 여러분. 그 어머니는 무엇을 돌려받았을까요?

아마도 일상의 행복이었을 겁니다. 내가 사랑해야 하고, 표현해야하고, 감사해야했던 것들. 아무렇지도 않게 흘려버렸던 그것을 잃고 나서야 깨닫는 눈물을 닦고, 다시 귀하게 돌려주신 그 새삼스러운 깨달음! 별 것 아닌 듯 살아버린 일상을 다시 돌려받은 것이겠지요.

다시 한 번. 살아도 사는 것처럼. 죽어도 죽는 것처럼. 지금 살아가는 모든 것에 대하여, 다시 돌려주심에 감사하며 살 수 있기를 바랍니다. 부디 오늘도 행복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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