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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야소리 님께서 남기신 글 (2004-04-16 19:38:27, Hit : 658)
<삶의 부실공사> 연중 제14주간 화요일

<삶의 부실공사>

사실 일이라는 것이 그렇습니다. 그 때 그 때 그 성과가 잘 드러나는 일이 있는가 하면 해봐야 별 표가 나지 않는 일들도 있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적당한 결과물이 예상되는 일들을 주로 행하거나 그런 일들에 신경을 많이 쓰고 사는 편입니다. 그러나 그 반대로 해봐야 별 표도 나지 않는 일들은 대충 대충 넘어가기 일쑤입니다.

사제의 시간도 마찮가진 것 같습니다. 일을 제대로 할려고 하면 끝도 없습니다. 만들고 찾고 하다보면 무지하게 바빠집니다. 그래서 괜시리, '신부님 만나는 것이 대통령 만나는 것보다 더 어렵다'는 어줍잖은 소리까지 들으며 살게 됩니다.

그러나 반대로 일을 안할려고 하면 그것 또한 끝이 없습니다. 굳이 뭘 안 해도 크게 욕먹지 않고 살 수 있는 삶이 또한 사제의 삶입니다.

그러다 보니 유혹이 여기서 생겨납니다. 표나는 일들, 드러나는 일들은 그 때 그 때 성심을 다하면서도 표가 나지 않는 일들은 대충대충 넘어가 버립니다. 보이지 않는 그 시간들을   <답게> 보내야 눈에 보이는 시간들이 제대로 드러날 것인데, 그것을 건너뛰며 살게 됩니다. 삶의 '부실공사'가 여기서 빚어집니다.

바쁘다... 세상 사람들이야 먹고산다고 바쁘다는 소리를 입에 달고 살지만 하느님의 은총으로 먹고사는 일에 '열외'를 누리는 사제의 입에서조차도 바쁘다는 말이 끊이질 않는다는 것은 무언가 잘 못 살고 있다는 소리처럼 들립니다.

표나지 않는 그 시간들을 제대로 행하지 않고 산다는 소리처럼 들립니다. 표나지 않는 시간들, 바로 기도시간입니다. 바로 묵상시간입니다. 바로 침묵시간입니다. 안 해도 당장 표가 나질 않으니 맨날 건성 건성입니다. 드러나는 시간들에 바쁘다고 맨날 뒷전으로 밀려있습니다.

모든 도시와 마을을 두루 다니시며 가시는 곳마다 회당에서 가르치시고 하늘 나라의 복음을 선포하시며 병자와 허약한 사람들을 모두 고쳐주신 분, 목자 없는 양과 같이 시달리며 허덕이는 군중을 보시고 불쌍한 마음이 드시어 추수할 일꾼들을 더 보내달라고 청하신 그분의 삶도 만만치 않은 고단함과 바쁨이 눈에 선합니다.

숱한 반대와 숱한 역정 속에서도 그분께서 중심 잃지 않고 꿋꿋이 걸어가실 수 있었던 힘, 그것이 무엇이었겠습니까? 바로 표나지 않는 그 시간들에 대한 철저함 때문 아니겠습니까?

일하고 남는 시간에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한가하고 유유자적한 시간에 묵상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이처럼 마귀의 세력 그 한 가운데서 기도가 있고 묵상이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기도하기 위해 신부가 된 것이고 사랑하기 위해 사제가 된 것인데, 언제부턴가 일에만 쫓아다니느라 정신 없었던 발걸음이 죄스럽습니다. 내공을 쌓아야 합니다. 기도라는 내공, 침묵이라는 내공이 쌓여야 말에 힘이 생기고 내 얼굴이 당신을 닮을 수 있습니다.

추수할 대상은 이처럼 내 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내 안의 시간들에 있었음을 이제는 깨달을 때가 왔습니다. 추수할 일꾼이기에 앞서, 내 자신이 먼저 추수의 대상임을 이제는 깨달을 시간이 왔습니다.

아무도 보아주지 않는 곳에서 조용히 하느님과 함께 보내는 그 시간들이 바로 우리 삶의 부실공사를 막는 유일한 방법입니다. 그런 오늘 하루를 우리 모두 만끽하였으면 좋겠습니다. 밀레의 '만종'처럼 노을진 석양... 추수 밭에서 조용히 기도 드리는 그런 저녁을 우리 모두 만들었으면 좋겠습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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